<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 그야말로 기뻐하며 -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_38p
1930년대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시대에서
피어난 유대인 소년과 독일 소년의 우정.
유대인 의사의 아들 열여섯 살 '한스 슈바르츠'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충족시킬 수 있는 친구가 나타나길 소원하던 어느 날, 학교에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전학을 온다. 교장 선생님을 따라 교실 문을 통과하는 콘라딘을 보며 슈바르츠를 포함한 반 아이들은 유령을 보기라도 한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아이가 일어샀다.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라고 합니다. 1916년 1월 19일 뷔르템베르크의 호엔펠스 성에서 태어났고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_26p
콘라딘은 명성이 푸르른 진짜 귀족, '백작'이었다. 슈바르츠는 또래임에 틀림없는 그 이상한 소년을,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오기라도 한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슈바르츠는 공들여 수집한 그리스 시대의 동전들을 이용해 콘라딘의 호감을 사는데 성공한다. 그날부터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우정이 깊어지는 시간동안 바깥엔 정치적으로 불안한 소문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마을 벽에 나치의 선전 포스터와 하켄크로이츠 표식이 나타났다. 슈바르츠의 책상 앞자리에도 쪽지가 붙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인들이 독일을 망치고 있다. 깨어나라, 시민들이여!' 종말이 오기까지는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를 경계하고 있어. 유대인인 네가 자기 아들을 친구로 삼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게 남들 눈에 띄는 걸 호엔펠스 가문의 오점이라고 생각해. 어머니는 또 너를 두려워하기도 해. 네가 내 종교적인 믿음을 갉아먹고, 네가 속해 있는 유대인들 집단이라는 건 볼셰비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고, 내가 네 악마 같은 간계의 희생물이 될 거라고 생각해. 웃지 마, 우리 어머니는 심각하니까. 나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지만 어머니 말은 이런 거였어. '이 불쌍한 녀석아, 너는 네가 이미 그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모르니? 너는 벌써 유대인 같은 말을 하고 있어.' _118p
나치 치하의 유대인이 겪은 고난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지만 <동급생>은 강제수용소나 대학살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대신 혼란스러운 시대에 적응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 슈바르츠와 콘라딘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과 그에 못지않은 숭고함을 담아냈다. 아이들이 뛰놀던 평화로운 풍경들은 부서지고, 시대는 광기에 휩싸인다.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를 견뎌야 했을, 같은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 한 줄에서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콘라딘의 선택에 긴 여운이 남는다. 여백으로 그려진 콘라딘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_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