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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쪼 Aug 19. 2024

날 자꾸 꿈꾸게 해

<주제 글쓰기-연극>

#1.

중고등학생 때 성당에서 1년에 한번씩 '문학의 밤'을 했다.

중2 때 연극에서 행인1을 맡게 되었는데 어쩌다 그 역을 맡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1인당 하나씩은 공연에 참여해야 했을테고, 남아있는 것 중에 누군가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대사는 한마디 밖에 없었고 갑자기 등장해서 진지하게 이상한 소리를 하고 가는 남자 역할이었다.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셨고 관객은 보이지 않았다. 

연습 때보다 조금은 상기 되어 대사를 했다. 

아직도 그때 조명의 눈부심이 기억날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 뒤로 매년 문학의 밤에서 연극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2.

고등학교 입학하니 겨울에 축제가 있고 동아리 시간마다 준비해서 축제날 무대에 올라가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촌극부에 들어갔다. 

웃기기 위해 만든 촌극에서 난 또 진지한 남자 역할을 맡았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남자 역할을 맡은 사람은 어느 정도 인기가 보장되기 마련이다. 팬레터도 받으며 나름 재미있는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 왜 그렇게 연극이 좋았을까 생각해보았다.

호흡을 멈추고 나를 따라 움직이는 관객들의 시선..

내 움직임과 말소리 하나에 반응하는 모습...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된다는 야릇한 감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같은 관심종자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활동이었다.


#3.

대학가서는 극회에 들어갔다.

담당 선생님이 있고, 어른이 중심을 잡아주었던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대학에서는 당연히 어른이니까 작품 선정도, 배역 결정도, 소품도, 의상도, 돈도..우리가 준비해야했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몇달 동안은 알바도, 연애도 멈추고 연극에만 몰두했다.

매일 밥을 함께 만들어 먹고, 대본 분석을 하고, 

연극 배우 흉내도 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공연이 끝나면 방을 잡아 밤새도록 회포를 풀었다.

아무리 사이가 안좋았더라도 그 날 밤이 지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끈끈한 사이가 됐다. 

대학 때 비로소 왜 연극이 종합 예술인지를 이해하게 됐으며...

살아가는데 사회성이, 리더십이, 책임감이, 배려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됐다. 


학창 시절에는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연극의 맛을 보았다면

대학 때는 살아가는데 갖추어야할 여러 덕목을 길러주는 넓은 의미의 연극을 경험하고 더 빠져들었다.


#4

연극이 보고 싶고, 하고 싶어 수도권으로 임용고시를 보기로 했다.

서울은 문턱이 너무 높았고 경기도는 범위가 넓다며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하셔서 언니가 있는 인천으로 합의를 보았다.

23살..대학로에 연습실이 있는 직장인 극단에 들어갔다.

신입 단원 모두 배우가 되는 워크샵 공연을 준비했다. 

매일 일 끝나고 왕복 5시간 지하철을 타야했고, 연습은 10시가 넘어서 끝났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연습 시간은 더 길어졌고 서울 사는 단원 집에서 자곤 했다.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연극이 좋아도 체력에 한계가 왔고 무엇보다 학교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워크샵을 해야 정식 단원이 되는데 난 워크샵 공연만 올리고 그만 두었다.


연습실이 가까운 극단을 찾아보았지만 입단은 망설여졌다.

연극을 하려면 나를 갈아넣어야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다.

이제는 내가 진짜 연극이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5.

바야흐로 학력 인플레 시기였다.

주변 선생님들은 이제 대학원은 무조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에, 아이 낳기 전에 최대한 빨리 시작하라고 했다. 

전공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나중을 대비해서 상담을 선택해라.' 

'학부 때 했던 전공을 살려라.'

'무조건 하고 싶은 거, 관심있는 걸 해라.' 

공부에 하고 싶은게 있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전공을 찾아보다 '연극'이라는 단어를 보니 웃음이 가셨다.

'하고 싶은 공부라는게 있을 수 있구나!'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교육과를 지원했다. 

그때는 서울교대와 한양대만 교육연극 관련 학과가 있었다.

교대는 '연극' 보다는 '교육'에 집중할 것 같아 가고 싶지 않았다. 

한양대는 연극으로 유명한 학교였고 교육대학원에 과가 생긴지 몇년 되지 않아 '교육'보다는 '연극'에 집중할 것 같았다.

(우리 과는 내가 졸업하고 얼마 뒤에 안타깝게도 사라졌다.)

내 예상이 맞았다. 교육이 아닌 '연극'을 전공하신 교수님들이셔서 

일반대에서 배우는 연극에 대한 교과가 주로 개설되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연극을 올리게 하셨다.

(아싸~내가 언제 한양대 극장에서 그것도 교수님 앞에서 연극을 해보겠나~~)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일반대학원이 아닌 교육대학원생인 우리에게 교수님은 크게 기대가 없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직장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연극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고등학교 연극 선생님, 중학교 국어 선생님, 영화감독, 연출 전공자, 대안학교 선생님..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났다.

학부 때는 한번도 공부해보지 않았던 과목들,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분야들을 공부했다. 

재미없는 수업이 하나도 없었던 행복했던 대학원 생활..

만삭으로 논문을 통과하며 영예롭게 마침표를 찍었다.


#6.

내가 워낙 연극을 좋아했으니까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까

교육연극 전공도 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놀이부도 만들고 연극지도도 해봤지만

재미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지, 남 하는 것을 보고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더 이상 무대에 서는 일도 연극을 보러 갈 수도 없었다.

선생님들 말씀이 맞았다.

아이가 태어나니 대학원이 웬말이냐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갔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울 때까지 온 신경은 아이에게 향했고

틈나는 대로 쉬고, 놀기에 집중했다.


#7.

둘째가 5학년이 되자 갑자기 삶이 여유로워졌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서야 들어왔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육아퇴근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무엇을 해야할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가장 하고 싶은게 뭐였나 생각해봤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연극'을 떠올렸다.

'이제 주말에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고 와도 되겠구나.'

처음엔 혼자 보러 다녔다가 언니와 뮤지컬 <빨래>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 다음부턴 같이 다니게 됐다. 언니는 내가 아니면 공연을 볼 일이 없다며 무슨 공연인지,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내가 선택한 공연을 같이 보러 다녔다.


#8.

이제는 보는 것을 넘어 다시 연극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야 해서 조율할 것도 많았고, 준비 기간도 길고 준비 사항도 많았다. 

한번 시작하면 주변에 모든 것이 stop...

이게 어쩔 수 없는 연극의 특성인데..이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난 무대에 서기를 욕심내면 안되는 거다.

그래서 정말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지..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연기 클래스를 물색하다 <빨래>에서 구씨 역할을 했던 '이승헌(킹콩)'배우님이 하는 수업을 발견했다.

인천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합정에서 모였고, 주말에만 수업이 있었고, 무엇보다 방학 기간이었다. 

매일 들어가서 새로운 클래스가 언제 열리나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신청이 뜨자 바로 결제 했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가까워지니 '막상하기싫어증'이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분명 멤버들은 20~30대일텐데..날 불편해하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내가 옛날 스타일로 연극하면 쪽팔리지 않을까?

인천에서 서울까지 몸이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때마다

"연극 진짜 하고 싶다며? 그냥 해~"

"기회가 이렇게 오지 않아. 갑자기 몸이 아플지,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서울에서 수업 들으러 지방에서 기차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 인천이 뭐가 머냐?"

늘 고민이 될 땐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을 선택하는게 낫지.


드디어 클래스 첫날..

다소 어색한 웃음이 몇분 지속됐다.

선생님은 이 순간이 제일 싫다. 빨리 지나가서 친해지면 좋겠다고 하셨다.

수업이 첫번째가 아닌 사람들이 많았고 어느 정도 친해보였다.

낯설었지만 몸풀기 활동을 할 때 오래만에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있었다.

맞아. 이런 거 했었지. 

숫자가 너무 많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승부욕 때문에 규칙을 어기지도 않는..어른들의 놀이에 빠져 있는게 참 즐거웠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즉흥극을 하고 나를 보이는게 쑥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이상 야릇한 연극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같이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사는지, 애인은있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안네의 일기>가 최종 작품이 되었다.

킹콩은 우리 클래스의 분위기가 좋아 장막에 도전해본다고 했고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나는 언제 연극을 또 해볼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마지막이 된다면

가능하면 오랫동안 무대에 있고 싶었다.

안네의 엄마인 '프랑크 부인'역을 맡게 됐다. 

안네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가진 진짜 엄마니까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배우로서의 배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학 때는 동아리원끼리 복작복작하며 공연을 올렸고, 대학원에서도 교수님이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셨으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 사람들이 모인 어른들의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좋았다.

몸풀기 활동 하나 하나에 담긴 연극적 요소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았고,

배우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킹콩의 디테일한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는 것도 좋았다.

연습하는 중에 다른 사람의 역할에 감정이입되어 마음이 일렁이는 것도 좋았고,

내 연기를 보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거울로 보는 것도 좋았다.

대본을 분석하며 나와는 다른 입장인 배우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도 좋았고,

실수하는 과정에 서로 낄낄대며 웃는 것도 좋았다.

소품을 서로 가져오겠다며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고,

매일 밤 보이스 톡으로 만나 서로 대사를 쳐주는 것도 좋았다.

연습하며 갑자기 찾아오는, 

정말 내가 안네 엄마가 된 듯 아이가 미웠다 이뻤다 원망스러웠다 하는 몰입의 순간은...황홀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맞을까 궁금해 시도해본 43살에 만난 연극은...

'너 연극 좋아하는 거 맞아. 찐이야!' 확신을 갖게 했다.


#8.

앞으로 만날 나의 연극은 어떤 방식으로..어떤 마음으로 나를 설레게 할까?

하고 싶은데 나이로 망설이고 자신없음에 뒷걸음질치며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까..

자꾸 나를 꿈꾸게 만드는 연극을 나는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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