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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쪼 Aug 25. 2024

내 장래희망은 쉬운 사람

<주제 글쓰기-맞춤법>

친구가 카톡에서 같은 맞춤법을 계속 틀렸다.

개인적인 카톡 방 말고 공적인 방에도 함께 있는데 같은 것을 계속 틀리는 것을 보니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럴 땐 말을 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과학적 상식이나 사회적 지식의 오류를 고쳐주는 것과는 다르게 맞춤법은 초등학교 받아쓰기 때(그것도 4학년부터는 받아쓰기를 하지 않으니 3학년 때까지) 

마스터했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 

다른 것보다 심히 부끄럽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맞춤법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민감하지도 않은데 

공연히 말을 꺼냈다가 상대방이 '지는 뭘 얼마나 잘 안다고?'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좋은 관계가 괜히 어색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됐다. 

그러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다른 친구와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집에 와서 보니 앞니에 커다란 고춧가루가 끼어 있었다.

박수 치며 크게 이야기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친구와 했던 가슴을 울렸던 이야기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왜 단 한 번도 이를 점검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친구는 왜 나에게 거울 보란 이야기 한마디 해주지 않았는지,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서운했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 순간 맞춤법이 떠올랐다. 

누굴 원망하랴 나 역시 2년 동안 묵혀놓고 말도 못 하고 있었으니...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다른 곳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알려주는 게 맞지.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친구가 같은 맞춤법 오류를 범한 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바로 고쳐주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유를 설명해야 할까? 그럼 가르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고민하다 무심하게 툭

" '~데' 아니고 '~대'^^" 눈웃음까지 넣었다. 

"아~그래?"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이나 말을 전할 때는 ~대 ^^"

아~ 드디어 말했다. 

2년 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친구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카톡으로 정확히 전달되진 않았지만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진 않았다. 

바로 다른 대화로 넘어가자 친구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호응했다. 카톡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진이 다 빠졌다.

'친구가 좀 무안했겠지. 하지만 그건 순간이고 이제 앞으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하지 않을 테니 잘한 거야. 암....이게 친구를 위한 거지.'

며칠 후 친구와 카톡을 했다. (정말 가까운 사이로 거의 매일 연락을 한다.)

그런데

"1등~했데"

"데!!!!"

"데!!!!!!!!!!!!!"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과 같이 '~데'를 연발했고

내가 '~대'라고 말해도

'자꾸 잊어버려~'라고 말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그 후로도 보란듯이 '~데'라고 썼다. 

내 우려와는 다르게 친구는 정작 내 말에 상처를 받지도, 크게 와닿지도 않았나 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맞춤법 틀리는 건 조금 창피한 일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고민하다 이야기 꺼낸 건데 너무한 거 아닌가? 하긴 내가 몇 년 동안 고민했단 사실을 모르겠구나. 결국 상처 안 받아서 다행이구나. 나나 잘하자. 띄어쓰기 다 틀리면서 무슨 맞춤법 타령이냐. (이 글에도 틀린 맞춤법이 엄청 많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뻗어나가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며칠 뒤 회식이 있었다. 잘 모르는 동료들도 있었고 아직 완전히 친해지지 않아 살짝 서먹한 자리였다. 식사에 이어 차를 마셨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내 앞니에는 커다란 고춧가루가 껴있었다.

또야..........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1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내 앞니의 고춧가루를 신나게 보여준 거구나.

지난번 무안함으로도 내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연신 이불킥을 했으면서도 이를 확인하는 습관을 장착하지 못했다. 

그래놓고 무슨 다른 사람이 내 지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창피함과 서운함을 운운한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이번 일들을 통해 얻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장래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마흔이 넘었지만 어른이란 생각이 당최 들지 않는다. 어른이 되긴 하는 걸까?)

어떤 모습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며 살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 이후로 고민해 보지 않은 내 장래희망에 대해서 생각해왔었다.


덜렁대고 자꾸 잊어버리는 내가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수많은 실수와 미처 생각하지 못함으로 원치 않는 방향의 행동들을 할 거라 장담한다.

내가 품은 커다란 장래 희망은 바로.. 


남이 나에게 지적하는 데 있어 크게 고민하지 않기를...

나를 진심으로 말하면 받아들일 사람으로 보아주기를...

꼬아서 생각하고 기분 나빠할까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닌

남들에게 한없이 쉬운 사람이 되기를...


아~적어놓고 보니 뚝딱거리며 오류 많을 나에게 너무 원대한 꿈이구나.

하긴 원래 꿈은 크게 가지는 거니까, 

오늘부터 내 장래희망은 쉬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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