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감정적 통제 능력과 자기 통제력
심리학자인 안젤라 덕워드와 마틴 셀리그만은 실험을 통해 고등학교 때의 성적, 출석률, 최정 성적을 예측하는 데는 자기통제력이 지능지수보다 두 배나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셜 애니멀 p.190
인간관계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고등학교 생활의 성패를 가로짓는 역량은 정서적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 자기통제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적 통제 불능 상태에서 행동적 통제 불능으로 이어진 내게 자기 통제력은 상상속의 자질이나 다름 없었다. 무엇보다도 외부적 통제를 견디기 어려웠다.
처음으로 엄마의 통제를 벗어나 기숙사에 살았던 1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을 통틀어 최악의 경험이었다. 내가 그간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기숙사 생활은 해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꿈과 우정과 모험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학업으로 절여진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그것도 인간관계에 민감한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기숙사 생활은 24시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환경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개인적인 시공간이 전무한 상황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마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감시 카메라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 무리 생활을 잘 한다고 자부했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그 곳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나라는 존재를 벗어남과 동시에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기숙사, 스쿨버스, 동아리, 학과 등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양한 소그룹에 공통으로 속해있다보니 소문이 빠르게 돌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물론 나도 그 환경의 공범이자 피해자였다. 말로 누군가를 상처주고 또 상처받는 환경 속에서 굳은살이 박혀 있을리 만무했던 나는 번번히 상처를 입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에 또 다시 상처를 입는 일의 반복이었다. 나처럼 내면이 단단하지 않은 학생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매일 안정적인 가정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상황은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흡사 매일 밤 또 다른 사회 생활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느낌이었다.
과도한 학비와 사교육비를 메꿔야 했던 나의 부모님은 늘 지쳐있었다. 더군다나 성적이 날로 떨어지는 딸에 대한 걱정과 당혹감 그리고 실망감에 휩싸여 벼랑 끝에서 안간힘을 쓰는 딸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내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은 학교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학을 가는 학생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사형 선고보다도 더 최악인 제안이었다. 이 학교의 졸업생이 되었을 때 내가 앞으로 사회에서 얻어갈 베네핏은 분명했다. 당시 나는 돈없고 빽없는 내게 학교의 동문이라는 타이틀이 사회적 계층을 높여줄 최고의 수단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건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그러나 이대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기숙사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이맘때 쯤 맹모를 자처한 부모들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오기도 했지만 내 경우는 지옥에서 나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격이었다. 매일 아침 새벽부터 셔틀버스를 타야하는 친구들 중에는 자취를 택하는 친구들도 속속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부모님이 어린 딸에게 쉽사리 자취라는 옵션을 쥐어줄 리가 없었다. 당시에도 잔머리가 제법 비상했던 나는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제 발로 나갈 수 없다면 쫓겨나는 수밖에.
당시 기숙사 규율 중에는 벌점과 상점 제도가 있었다. 주로 학생들의 생활습관을 유지하기 위한 규율들이었다. 불시에 청소 상태를 점검한다거나 자습 시간에 컴퓨터, 핸드폰 등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들이었다. 반면 구성원으로서 공동 생활에 기여하는 행동을 할 경우 상점을 받을 수 있었다. 공용 공간 청소나 봉사 활동으로 벌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과도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던 나는 벌점과 상점을 모두 얻는 방법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단지, 기숙사에서 탈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문제아라거나 불량한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전략은 벌점과 상점 모두에서 1등을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벌점 상쇄를 위해서는 상점 비율이 훨씬 높아야 했기 때문에 둘 다 높다고해서 목표 달성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느라 바빴고 기숙사에 남기 위해 둘 다 낮게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으니 말이다. 결국 그 해 말, 나는 기숙사에서 가장 높은 상점과 가장 높은 벌점을 받고 퇴소한 유일한 여학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