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요즘 내 삶의 키워드는 '자기 신뢰'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현실에 발을 붙이기 힘들었다. 한동안 마음이 붕 떠서 갑자기 잊고 있었던 옛 꿈이 떠올랐다. 지금 회사에 입사 전 나는 꽤나 간절하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 최종 면접까지 가서 고배를 마시던 어느날 마음속에 이상한 소망 하나가 떠올랐다.
"차라리 인도에 가자." 그때 나는 요가를 시작한지 이제 막 반년이 된 꼬꼬마 요기니였다. 뻣뻣하게 굳어진 몸으로 제대로 동작도 잘 못하면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건지 요가의 발상지인 인도에 가서 지도자 과정을 밟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활활 타올랐다. 정보도 많이 찾아봤고 모아둔 돈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 즈음 지금의 회사에서 서류합격 연락이 왔다. 일단 하던 준비가 있으니 면접을 보러 갔다.
문제는 면접을 끝내주게 잘 본데서 시작된다. 그즈음 스펙왕이었던 나는 주요 공기업 여러곳에서 최종 면접까지 갈 정도였지만 늘 긴장한 탓에 면접을 망치곤 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인도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미련이 사라진거다. 면접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평소 나의 모습을 꺼낼 수 있었고 면접관과 티키타카도 잘 됐다. 두 번의 면접에서 나올때 굉장히 산뜻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최종 발표를 기다리면서 나는 붙어도 그만 안붙어도 그만을 넘어서 '차라리 합격하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보란듯 떡 붙어버리고 결국 나의 백일몽은 꿈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꿈이 다시 돌아온거다. 더 늦기전에, 그러니까 아이를 갖기 전에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기 시작했다.
이런 나를 현실로 데려온 건 남편의 한마디였다. 그는 단호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현실적인 생각을 해야지.' 옛날의 나였다면 굉장한 반감이 들었을텐데 30대의 나는 그래도 사리판단은 돼서 다행이다. 사실이었다. 현실로 옮기려면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그 길에 확신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현실 도피적인 마음의 기반에는 '이 일이 내 일이 맞나'라는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Who is your hero? 나의 영웅이 누구였는지 꼽아보니 카드캡터 체리, 모아나 그리고 카레이도 스타의 소라가 떠올랐다. 그 친구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는 과정에서 요즘의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신뢰'였다.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했던 친구들이다. 하지만 지난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와서는 자신을 믿게 된다.
나는 사실 오랜 꿈이 아니라 오랜 도피처를 떠올린걸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어디든 여기만 아니면 훨씬 멋진 세상일 것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이 길이 맞나?'처럼 정답을 찾으려는 마음은 결국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것 아닐까. 내가 나를 믿는다면 내가 걷는 길에 의미를 부여해 없던 길도 만들어내겠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건 나에 대한 신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