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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니 Jan 06. 2024

도시의 품에서 도약을 꿈꾸다



여전히 반쯤은 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방문한 학교는 한겨울 바닷바람이 매서운 간척지에 세워진 곳이었다. 내가 입학하기 1년 전쯤 새로 완공된 캠퍼스에 입주해 모든 것이 새 것이었다. 게다가 입주와 맞물려 본디 시립대였던 곳이 국립대로 전환된 시점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리며 학비도 저렴하니 적이라도 두고 재수를 하자는 생각으로 신입생 대상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다.


심드렁한채로 강당에 들어서자 내가 소속된 과의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삼삼오오 모여있는 신입생들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강당 한켠에 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다니지도 않을 학교인데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게 피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교수님들의 환영사가 시작됐고 그 후로 각 행정과에서 나온 교직원들의 발표가 시작됐다.겉으로는 세상 무관심한듯 앉아있었지만 조금씩 새로운 시작을 앞둔 강당의 들뜬 분위기에 동화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국제교류원 소속 교직원들의 발표가 시작됐다. 인천시의 글로벌 거점 대학으로의 성장을 위해 학교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투자할 의향이 있는지 소개하는 세션이 시작됐다. 해외 교류 대학의 수와, 학생들에게 주어질 교환학생과 인턴십의 기회, 국제학생회에 주어지는 기회 등…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삶의 얼개가 그 날 거기서부터 분화하기 시작했다는 걸. 이 학교에서 찾는 인재가 나인것만 같았고 내가 이 순간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운명처럼 느껴졌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시절 내내 인천시에서 선발된 영어 영재로 시의 투자를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외삼촌이 계셨던 호주에서 두 번의 방학을 보내고 온 덕분이었다. 주말이면 영어마을에서 원어민 강사의 수업을 들었고, 방학때는 집중 영어 캠프나 해외 연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살았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인천에서 성장한 나는 인천이 키운 학생이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에는 서울로 유학을 떠난다고 기세등등했던 아이는 인천으로 돌아오게 된것이 내심 창피했다. 금의환향해도 모자랄 판에 대입 실패자의 신분으로 돌아오다니. 나르시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애로 똘똘 뭉쳤던 청소년은 어디로가고 잔뜩 풀이 죽은 작은 어른이 그날 거기에 있었다. 그런 내게 환영한다고,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너를 다시 키워보겠다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를 듣던 그 날. 나를 다시 품어줄 곳은 역시 내가 나고 자란 도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스치듯 들었던 것 같다.


황량했던 도시가 다시 꿈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의 실패를 짐작만 하는 사람들 틈에서 새롭게 시작하자. 두번째 기회는 다시는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샘솟았다. 다시 시작해보기로 결심하자 무채색이었던 나의 스무살에 색깔이 입혀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멈췄던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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