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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니 Feb 08. 2021

&_다시 올 겨울을 준비하며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기


실은 두려웠다.

인생이 순환하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필히 다시 오리라.


겉으로는 ‘난 이미 한겨울을 겪어봤어’라고 태연한 척했지만 다시 올 겨울이 두려웠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여전히 나는 완벽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삼재니, 대운이니, 운이 바뀌는 시기니 하는 말들에 흔들렸다. 언젠가 나한테 맞는 완벽한 목표와 꿈이 생길 거고, 그러면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마법을 기대했다. 나의 게으른 진심이었다.


내가 완벽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세우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은 그 날, 나는 모든 걸 멈추기로 결심했다. 방향을 잃은 채 나부끼는 연처럼 줄이 끊어지면 멀리 사라질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유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제주로 떠났고 추사의 발자취를 따라 목적지인 사찰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불에 참여하고 홀로 법당에 남아 명상을 이어가도 여전히 운명적인 무언가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내가 가진 타고난 재능이 뭘까, 대운이 든다던데 그때쯤이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꿀밤 꽝.

스님께 꿀밤을 한 대 맞았다. 스님은 내게 사주니 점성술이니 하는 통계에 속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 것이고, 그 결과 또한 내 결정의 결과라고. 다른 누군가가 반쯤 알고 한 말에 속지 말라고.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시키셨다. 네 삶을 살라고.


자꾸만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것도, 언제 올지 어떻게 올지 점 쳐보는 것도 스스로의 기준이 아니라 남의 말에 기대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젠 알겠다. 완벽함이라는 기준도 정말 내가 세운 것이었을까? 마음의 그릇에 덕지덕지 붙은 완벽에 대한 집념을 인지하자 깨끗이 비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내가 키워야 할 건 다시 겨울이 오더라도 남아있을 나만의 송백, 즉 나만의 태도였다. 비운 그릇을 성실히 채워가는 과정만이 나의 몫이다. 그러다 가득 찬 그릇이 찬 겨울을 만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더 큰 그릇을 빚기 위해 깨지는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그러하게 오리라.


‘이 수염난 친구 누군줄 아나? 아주 미남이시지?’ 김환기 작가가 아내분에게 쓴 편지


김환기 작가는 그림을 팔려는 노력, 즉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은 뒤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하여튼 내 그림은 내가 아끼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도 내 그림이 귀엽다. 언젠가 글로도 쓴 바 있지만 문둥이도 제 자식이 귀엽듯이 나도 내 그림이 아니 귀여울 수가 없다.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제일 귀여워해 줄 사람은 부모님도, 연인도 아니다. 나 스스로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가엽게, 귀엽게 아끼는 날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얼음 조각은 녹아내린다. 그렇게 다시 찾아오는 나의 계절을 반갑게 맞이한다. 자연스럽게, 나답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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