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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담 Sep 20. 2024

포기한다는 것의 의미

새로운 선택의 시작

3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던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특히 어떤 목표나 꿈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강했다. 포기하면 지는 것만 같았고,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매일 10시간씩 준비하던 회계사 시험을 그만둘 때도, 30장이 넘는 기획서 작성과 2번의 면접 끝에 합격한 스타트업을 나올 때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은 다양했다.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것이 두려워 외면해 왔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난독증에 걸렸고, 곧 간단한 문장조차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지만, ‘스트레스 좀 받았다고 글을 못 읽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손에 쥔 것을 놓을 수 없어 버티려고 했다. 회계사 1차 시험을 세 달 남겨두고, 나는 눈으로 읽지 못하는 문장을 녹음해서 들으며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어떡하지?’라는 암담한 물음을 던지면서..   


그 후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별일 없었다.      


가끔은 미래가 불안했지만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마음에 후련한 시간을 보냈다. 공부해 온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1분 30초 안에 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삶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왜 지금까지 나는 인생을 정답 맞히기 시험처럼 살아왔을까?’

그 의문을 시작으로 머릿속에 온갖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세상에서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까?’
‘그 누구의 인정도 받지 않아도 된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      
‘내 인생이 밑바닥이라면 마음껏 시도하고 싶은 것은 뭘까?     



혼자 사색하며 짠! 하고 바로 답이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빈둥빈둥 놀았다. 하지만 그런 여유 속에서 하나씩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포기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것은 시도해 보고, 또 나와 맞지 않는 것은 금방 그만뒀다. 더 이상 내가 무언가를 그만둔다고 나를 비난하거나 강요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asmr 음향을 제작하고, 또 어떤 날은 웹소설을 썼다. 어떤 날은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다가 폐업 신고를 했다. 인터뷰를 하러 다녔고, 내가 가진 재능을 팔아보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렇게 나는 사업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포기하는 법을 배운 후, 삶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다.


지금도 그 깨달음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언가 두려움이 들 때면 ‘일단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포기하자!’라고 외친다. ‘포기하지 마, 힘내!’라는 말보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라며 나를 달래는 건 덤이다.


새로운 선택지는 언제나 열려있다. 어쩌면 오늘 포기한 덕분에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 포기하는 법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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