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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카 Sep 17. 2021

그때는 그게 내 최선이었다

<최선의 삶>(2021), 이우정 감독


누구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 성인 사이의 미성숙하고 예민한 사춘기 시기,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았을 때 후회되는 일이 허다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시기를 겪는 세 명의 소녀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어린 날의 후회와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로 늘 붙어 다니던 강이, 소영, 아람의 관계는 세 사람의 충동적인 가출 사건 이후 한 차례 변화를 겪는다. 막무가내로 서울에 상경한 세 사람은 가혹한 현실에 부딪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며칠 동안 겪은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 어딘가 어색하고 야릇했던 기류 등으로 인한 저마다의 마음속 응어리는 발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안은 채 학교로 돌아온 그들 사이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공 강이는 늘 앞에 나서서 행동하기보다, 뒤에서 친구들을 지켜보는 인물이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작은 불만도 표출하지 않는데, 함께 가출한 소영이 카드를 몰래 숨겨 왔음을 알았을 때도 ‘너 카드 있었어?’라고 물을 뿐이다. 가출 사건 후 학교에 돌아온 강이는 변해 버린 소영과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만, 최악의 결과가 두려웠던 걸까? 아람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을 뿐 주도적으로 관계를 회복하려 들지는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이 가진 불안과 혼란, 분노는 발화되지 못한 채 점점 불어나고, 종래에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씨네21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강이 역을 맡은 방민아 배우는 '15년에서 17년이 흐른 후 조금은 괜찮아진 강이'를 생각하면서 내레이션을 녹음했다고 한다. 영화 막바지, 성인이 된 강이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반추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이도 그랬다. 아람이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가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사춘기 시절의 우리는 누군가에게 '떠나간 사람'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기심, 불안, 망설임으로 인해 엉킨 실타래처럼 꼬이다가 결국 놓쳐 버린 인연들이 떠오른다. 분명 더 나아지고자 했던 선택이 때로는 원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어긋난 관계를 되돌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는 강이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는 소영처럼, 미숙했던 10대의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는데 말이다.


가슴 깊숙한 곳에 어린 날에 대한 후회를 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인 강이의 목소리는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기억 속의 옛 인연들에 대한 죄책감과 원망의 잔재들을 이제는 놓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렇듯이 너 역시 그게 최선이었겠지.”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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