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은 도토리
#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까진 아니지만
어렸을 때의 꿈은 성악가였다. 동요대회에서 상을 받고, 학교 교가도 녹음해 보고, 여러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여러 이유로 인해 금방 그 꿈을 접었지만, 문득 내가 ‘왜 노래를 좋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교내 노래 경연 대회를 여는데, 반 대표로 나갈 사람을 뽑았다. 내 추구미인 친구와 나만 남았는데, 당연히 ‘이 친구가 되겠지~.’란 생각을 하며 정말 아무런 기대와 욕심 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나보고 나가라는 것이다. 매우 당황했지만, 그 순간 ‘내가 잘하는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매우 들떴던 기억이 난다. 반대항에서도 1등을 했다는 미담은 없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신감’이란 것을 맛본 것 같다. 항상 부모님이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했던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던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유년시절의 자신감은 너 덕분에 채워졌었구나. 고마워 노래야.
# 어문계열이라고 해서 당연히 통역을 잘하진 않는다구요
나는 대학교에서 어문계열을 전공했지만, 그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회화 수업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B+에 머물렀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 후, 해외 관공서에서 외국인 공무원으로서 3년간 일한 적 있었다. 이 직업의 매력은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별로 업무 내용이 꽤 상이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업무 밸런스가 정말 좋았다. 초등학생~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 강좌를 진행하며 강사가 되기도 하고, 한국과의 교류할 때는 통/번역사가 되기도 하고, 그 지역을 PR 하기 위한 홍보 활동 때는 마스코트가 되기도 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업무는 통역이었다. 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경험은 처음이라 일상적인 단어조차 모르는 것이 많았고, 통역 업무가 과중되다 보니 심적으로 버거웠다. 그러던 중 1년 차를 위한 통번역 연수를 가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큰 기대를 품고 참여했다.
# 뭐지? 이 통곡의 벽은
나와 통번역과의 애증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통역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내 자신감을 갉아먹는 도둑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통번역 연수는 전국 각지에서 온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본격적인 통역 훈련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 함께 모여 진행하는 통역 연수에서 상대적으로도 누가 봐도 내가 확연하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개처형처럼 느껴졌던 통역 실습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날 저녁, 동료들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때, 혼자 방에 남아 울며 다음날 실습 내용을 보고 또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다음 날 통역 실력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내공은 그렇게 간단히 쌓이는 게 아니긴 하지… 그렇게 내 통번역 연수는 눈물과 트라우마로 얼룩진 채 끝나버렸다.
# 사실 꼴불견이었어
어느 날 M이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자신감 없는 모습과 태도를 보이는 거지? 안타까우면서도 솔직히 좀 꼴 보기 싫었어.”
통번역 연수 때의 내 모습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용은 다소 충격이었지만, M은 진정으로 나를 위해 용기 내어 말해줬다고 생각한다. 통번역 연수 중,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일부러 나와 팀을 짜고 쉬운 부분을 나에게 맡겼던 M이었기에, 누구보다도 나의 못난 면까지 알면서도 나를 ‘화사한 봄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M이기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거울치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타인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외국 관공서에서 일할 때, 스페인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통번역을 전공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등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전임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항상 보였다. 전임자는 친화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좋은 점과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부족한 점과 비교하면 당연히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충분히 멋지고 실력 있는 사람인데도, 왜 그렇게 본인을 과소평가할까 안타까웠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네.
# 태니지먼트 검사로 자신감 업그레이드
‘태니지먼트(Talent+Management)'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강점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검사이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후, 예상보다 많은 통역 업무를 맡게 되어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중(귀국하면 절대 통번역 일은 하지 않을 거라 떠벌리고 다닌 덕분에 입벌구란 불명예 별명도 획득!), 우연히 태니지먼트 검사를 접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재능과 강점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신입사원이나 부서 이동 후 직원들에게 유용할 것 같아 최근 태니지먼트 전문가 양성 과정도 수료했다. 그 후, 회사 후배이자 제자 B를 대상으로 디브리핑을 진행했는데, 뜻밖의 감동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일부분만 공유해 보자면…
평소 다소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재능 발현 사례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두드러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본인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어, 본인의 재능을 어떻게 강점으로 사용할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B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내 재능인 '양성'이 가장 빛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비록 자신감은 0일지라도
자신감 0, 용기 0. 정말 놀라웠다.
이런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서 꾹꾹 눌러 담고 숨기고 싶은데, 최근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 새어 나오는 것 같아 불안하다. 마치 8년 전의 꼴불견인 나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자신감은 내 ‘능력’을 믿는 것이고, 확신은 내 ‘선택’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는 어려움을 예상하지만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말이죠? 남들에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실제로 내 태도는 타인에게 빨간색+회색이 합쳐진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빨간색: 타고난 욕구 태도 / 회색: 후천적인 행동판단 태도. 의도적으로 내가 훈련한 것)
아마도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며 점차 연차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것이 반영된 것 같다. 스터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의 영향도 있었겠지.
# 자신감 충전 한 스푼
사실, 내가 부족한 부분인 자신감, 확신, 용기는 다른 태도들보다 본인의 의지로 높이기 힘든 영역이라고 한다. 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과 질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달 전, 정말 존경하는 내 직속 상사에게 손 편지를 받았는데, 읽다가 울컥한 부분이 있었다.
치프람님은 본인의 역량을 스스로 의심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탄할 때가 많거든요. 제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생각해내기도 하고, 계획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추진력도 그렇고요. 그래서 본인에 대한 의심을 지우고 지금처럼만 시간을 쌓아가면 저보다 더 좋은 HRer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자신감 컨트리뷰터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성장할게요:)
# 그럼에도 마냥 싫어할 수 없는 너
통역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화자를 만난다. 예전에 내 피톤치드 1군 멤버 E가 여러 유형으로 나눠본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아웃사이더 유형(무자비 속도 래퍼형), ‘그거 알잖아 그거~유형(난 모름)’, 횡설수설 유형, 거짓말쟁이 유형(자료대로 읽겠다고 했으면서 새로운 내용 대거 창조) 등등…
이런 고난도 순차통역을 할 때, 중요한 내용을 빠르게 캐치해 정리해서 통역하면 ‘오 나 좀 언어의 마술사 같은데?’라는 소소한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물론, 비율로 따지자면 ‘좌절과 분노 95 : 성취감 5’ 정도… 근데 그 5가 너무 달콤하단 말이죠… 통역할 때만큼은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가 아닌 꿀단지를 열심히 채우는 벌꿀이 되어보려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통역이다. 내가 더 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