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840조 재판상 이혼사유에 대해서
INTRO
결혼도 계약일까요? 계약이라고 하면 금전적 대가가 오가는 거래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혼인도 넓은 의미에서의 계약관계에 해당하며 반드시 서면을 갖추는 등 요식행위가 필요한 요식계약입니다. 채권계약이나 물권계약과는 다르지만 상호간의 합의와 법률이 정한 절차를 필요로 하는 가족법상의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일방의 강권으로 혼인관계가 성립될 수 없듯이, 어느 일방의 일방적 의사만으로 이혼이 가능할 수도 없습니다. 이혼은 혼인이라는 계약관계를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는 절차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상호간의 협의에 의해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협의는 역시 강제될 수 없는 것이기에,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의 의사가 없거나 이혼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재산분할, 양육권 등 쟁점에 관하여 다툼이 있어 이혼을 거부하고 있다면 협의이혼은 불가능하므로 재판상 이혼 즉,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면 이혼소송이 굉장히 일반적인 것 같지만, 사실 본 절차를 아무 때나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민법이 재판상 이혼 절차에 있어서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적합한 이혼소송사유가 있어야만 승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전문변호사로서 많은 의뢰인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처음에 이혼소송사유에 대해서 상당히 오해를 하고 계신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혼소송사유가 존재하고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여 승소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효과에 대한 오해뿐만 아니라, 이 사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해하게 되면 이혼 이야기가 오가는 시점부터 전략적 오판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현재 이혼소송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이혼사유의 개념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혼소송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당장 혼인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결단이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아파트나 예금, 채무 등은 어떻게 나눠야 할 것인지, 앞으로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 생각할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 당연히 필요하지만 협의이혼이 아니라 재판상 이혼을 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무엇보다도 이혼소송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아무 때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통해 혼인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합당한 이혼소송사유가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유 없이 이혼을 하려는 사람은 없을테니, 나름대로의 이혼소송사유는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사유란 내가 왜 이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정하고 있는 요건을 의미한다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배우자가 대화를 거부하고 소통이 되지 않아 이혼 및 위자료를 청구한다거나, 성격 차이로 혼인을 해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얼핏 보아서는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법률은 민법 제840조에서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사유가 존재하는 때에 비로소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소송사유는 자의적으로 논리를 전개해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민법 제840조 각호에 규정된 내용을 충족한다는 점을 증거로서 입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인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률적 검토 결과 현재 소 제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방법을 달리하거나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송을 제기할 요건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협의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소 제기를 통해 강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혼소송사유를 민법에 규정된 내용에 기반하여 분석해야 한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이 민법상의 규정은 제840조 제1호에서부터 제6호까지의 사유인데, 이는 대부분 피청구인인 이혼소송피고의 유책성을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인 제1호사유를 예로 들자면,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경우에 부정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는 부부 간의 정조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유책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법은 이른바 유책주의를 택함으로써 이혼청구의 인용조건으로 피청구인의 유책성을 반드시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상대방이 민법 제840조 각호 중 어느 하나 또는 복수의 유책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충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책행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이혼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고하실 만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의 유책행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이를 입증할 증거 하나만 있어도 이혼이 가능하지만,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와 같은 경우에는 단 1회의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하여 이것만으로 이혼이 가능하다고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실무상 가정폭력 등과 같은 이혼소송사유는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 외에도 제6호 사유를 함께 주장하여 배우자의 지속적 폭력으로 인해 혼인이 파탄되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장을 작성하여 소송을 개시할 때부터 이혼소송사유에 대하여 철저하게 논리를 구성하고 그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소한 자료까지도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파탄주의의 요소를 점차 폭 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유책성을 묻지 않고 오직 혼인 파탄이라는 객관적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청구를 인용할 수 있다는 파탄주의의 전격적 도입과는 거리가 멀지만, 명백한 어느 일방의 유책행위가 없더라도, 심지어 청구인 스스로가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이미 혼인이 파탄된 상황이라면 이혼 청구를 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제840조 제6호의 사유는 파탄주의로의 확장에 대한 법문상의 근거가 될 수 있는데, 부정행위나 부당대우, 생사불명 등 명확한 사유가 아니더라도 혼인을 지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있다면 이혼소송사유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이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판례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반드시 구체적 사안을 가지고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여 승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의 전제조건으로 이혼소송사유가 인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결정적 증거 한두가지로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할 수 있지만, 때로는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증거와 사실확인서 등을 통해서 이혼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산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진행될 수 없으므로, 소송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가장 먼저 상담을 받아 보고 철저하게 확인하셔야 할 것이 바로 이혼사유입니다. 만일 즉각적으로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전략적인 소송 수행의 결과로 이혼 청구가 인용될 가능성도 있으며, 현 상황에서 소 제기가 불가능한 사례라 하더라도 차후에는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핵심적 내용을 확실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혼소송사유가 인정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승소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단 이혼청구가 인용되어 혼인관계를 청산한다고 해도, 실제 재산분할이나 친권 및 양육권 등이 본인이 희망하는 방향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선에서 판결이 내려졌는지에 따라서 상처뿐인 승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역시 반대편 피고의 입장에서도, 이혼청구를 막지 못했더라도 위자료의 최소화 및 재산분할과 양육권에서의 승리로 이어진다면 패소하였더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이혼청구가 인용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지반이 마련된 상황이라면, 이러한 '유책사유'와는 무관한 재산분할청구권과 친권 및 양육권 등의 쟁점에서 후회 없는 이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고민하실 필요가 없고, 가능한 선택지가 없는데 고민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안의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현 시점에서 배우자와 이혼을 하고 싶은데 협의이혼의 가능성이 없어 소송 진행을 희망하고 계시거나, 상대측으로부터 이혼소송이 제기되어 왔는데 청구를 기각시키고 가정을 재건할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망설이지 마시고 문의 주십시오.
이혼전문변호사 이 성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