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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호 변호사 Apr 29. 2024

부당파혼위자료 청구 요건과 범위

약혼해제와 부당파혼 및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에 관하여


INTRO


살아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에 관하여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됩니다.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그 무엇이든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겠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되며, 무책임하게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통 계약이라고 할 때에 떠올리는 채권계약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법상의 계약상 의무를 쉬이 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약혼을 한 이후에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동입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혼인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니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 같다는 이유로,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잘 안 맞는다는 이유로 파혼을 통보하는 것을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요?


이혼전문변호사로서 활동하다 보면 이미 성립한 혼인관계에 있어서의 이혼이나 사실혼 파기 등에 대해서 주로 접하게 되지만, 때로는 이처럼 혼인관계가 시작하기도 전에 법률적 분쟁이 생기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특히 상대측이 바람을 피우거나 하는 등 명확한 유책사유가 있어 본인이 파혼을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상대방으로부터 파혼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은 경우에는 오히려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얼마든지 부당파혼위자료를 청구하여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저극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받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1. 약혼의 성립과 그 불이행 및 부당파혼위자료의 청구


약혼(約婚)이란, 두 사람이 장래 혼인하기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상 약혼식을 성대하게 하는 일이 드물어 약혼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반드시 약혼식을 올리는 등 요식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약혼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법률적으로는 당사자 간 약혼의사를 통하여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약혼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혼인이 가능한 연령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약혼은 가능하며, 약혼한 이상 장래에 혼인을 하여야 할 법률적인 의무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약혼 역시도 일종의 계약(契約)이지만, 일반적인 채권계약과는 달리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스스로의 자발적 의사로 혼인을 약속했다고 해도, 이미 약속한 바가 있으니 혼인을 이행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민법에서도 이 내용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제803조에 따르면 약혼은 강제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효하게 약혼이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으면 이를 강제할 수 없으니, 파혼을 당한 입장에서는 자존심도 상하고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강제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파혼을 언제나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혼인을 약속하는 행동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스스로의 의사를 뒤집은 점에 대하여 손해배상으로 부당파혼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약혼의 해제와 관련하여 위자료를 청구하는 두 가지 유형


소위 말하는 파혼위자료 청구 소송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 의하여 발생합니다. 첫째로는 민법 제804조의 규정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때에 약혼을 해제하면서, 약혼 해제 시의 과실 있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민법 제806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절차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큰 그림에서는 유책배우자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정당한 파혼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약혼 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2. 약혼 후 성년후견개시나 한정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은 경우

3. 성병, 불치의 정신병, 그 밖의 불치의 병질(病疾)이 있는 경우

4. 약혼 후 다른 사람과 약혼이나 혼인을 한 경우

5. 약혼 후 다른 사람과 간음(姦淫)한 경우

6.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生死)가 불명한 경우

7.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그 시기를 늦추는 경우

8. 그 밖에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약혼을 한 다음에도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우거나,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이미 약혼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였다면(당연히 약혼만 한 것이니 중혼은 아닙니다) 이는 정당한 파혼 사유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제 파혼사례를 살펴보면 어느 한 쪽에서 이런 잘못을 한 때에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약혼해제의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고 변심하는 경우에도 부당파혼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상기 파혼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파혼을 통보하였다면 이는 법률상 적법한 약혼해제라고 볼 수 없으므로 오히려 부당파혼위자료를 청구하여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위 규정을 살펴보아도 명백한데, 민법 제804조 제7호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시기를 늦추는 때에도 약혼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대방의 부당파혼에 맞서 오히려 약혼을 해제하고 이를 통보한 측에게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받을 수 있는 부당파혼위자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3. 상대방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의 범위는


보통 이혼소송의 경우, 혼인의 파탄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곧 정신상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입니다. 당연히 상대측의 이유 없는 파혼 통보로 인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때에도 이로 인한 정신상의 고통을 배상하라는 부당파혼위자료 청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혼소송에서는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으나 재산분할청구권은 혼인관계가 해소된 때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므로 부당파혼위자료를 청구하면서 재산분할까지 함께 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약혼이 깨어진 경우에는 재산분할은 아닐지라도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바, 파혼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금전적 손해에 대해서도 함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법률적으로 적법한 이유 없이 파혼을 통보해 온 상황이라면, 상대측에서 본인의 행동이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부당파혼위자료 및 파혼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모두 배상하여 전보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는 즉시 전문가를 통해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본 소송은 엄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가족법상의 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한편, 재산상 손해까지 발생시킨 점에 대하여 마땅히 추궁해야 할 책임을 묻는 절차이므로, 이미 신의를 저버린 상대방과 협의를 위해 줄다리기를 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응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혼전문변호사 이성호


법률상담문의: 1688-6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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