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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moon Feb 22. 2023

어쩌다가 유화를?

그림이 좋았던 아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은 놀이였고, 탐구였으며 내면과 오롯이 비밀스럽게 할 수 있는 교감이었다. 그중에서도 인물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다. 인물을 그릴 때면 사람을 깊이 관찰하게 되었다. 사람의 눈, 코, 입술, 얼굴의 윤곽을 천천히 바라보며 그렸다. 사람이 짓고 있는 표정에 따라 내 표정도 같이 슬퍼지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며 한 인간의 개성이 묻어있는 감정을 공유받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8살 무렵에는 만화책에 있는 그림을 무작정 따라 그렸다. 한창 만화책을 많이 보던 시기였는지라 만화 특유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그림체가 눈을 파고들었다. 사람이 캐릭터의 형태로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게 참 매력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림을 그릴 재료는 연필이면 충분했다. 색칠을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흰 바탕과 흑연의 조화만으로도 재미있었고, 어린아이의 눈에는 본인의 그림이 꽤 멋있어 보였다. 그리는 행위만으로도 흥분을 느꼈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가서는 주로 수채화나 색연필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다른 재료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SNS에서 그림을 구경하다가 오일 파스텔을 알게 되었다. 그림 속 오일 파스텔의 쨍한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무작정 오일 파스텔을 구매했고 그림을 그렸다. 오일 파스텔은 파스텔보다 가루날림이 훨씬 적고 색이 선명하게 잘 나타났다. 색 조합을 잘해서 쓱쓱 칠하고 블렌딩만 잘해줘도 예쁜 그림이 나왔다. 그런데 계속 그리다보니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중요한 무언가를 빠트린것만 같았다. 내 그림은 말그대로 '예쁘기만' 한 그림이었다. 예쁜 것들이 넘치는 시대인데, 그림마저 예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가공되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널려있다. 솔직한 것에서 오는 순수한 미를 찾고 싶었다. 인물화를 그리는 것은 인간을 매듭짓는 일이다. 얼굴의 요소와 표정, 한 인간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내면을 엉키지 않게 엮어가며 진실한 인간을 그려내고 싶었다. 거짓되고 포장된 '나'는 SNS와 마음을 숨기며 대화하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으로 족했다. 그림에서만이라도 가식없는 인간을 마주보고싶었다. 가면을 쓰지 않은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점점 그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보는 행위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심도 있게 관찰하고 사색하며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산울림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전시회를 많이 다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이었다. 내 눈길을 가장 사로잡았던 작품은 김환기 화백의 '산울림'이었다. 그날 처음 미술작품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 사실 그전까지는 그림만으로 사람이 충격을 받거나 기묘한 경험을 하는 게 가능한지 의심해왔었다. 이러한 의심 때문에 미술작품을 볼 때면 항상 눈에 얇디얇은 의심의 막을 치고 감상했었다. 근데 '산울림'을 보고 그 의심의 막이 찢겨버렸다. 담백하고도 아름다웠던 그 그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종교적 체험을 느끼게 해줬다. 며칠 동안 작품의 푸르른 색채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림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그려지기도 하지만, 작품 그 자체로 인간이 흥분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림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크나큰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뒤로 유독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현대미술의 묘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버렸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가지 습작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나를 유화에 매료시켰다.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저항할 새도 없이 색채가 몸을 휘감아버렸다. 특유의 암실 같은 분위기와 더불어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색들이 숨통을 조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심장으로 가는 피가 서서히 멎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채혈하기 전 피가 통하지 않게 채혈 밴드로 몸 곳곳의 혈관을 압박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그 후에 온몸에 더 진한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심장은 처음에는 조심히 두근거리다가 나중에는 거세게 쿵쾅거렸다. 갈수록 베이컨의 그림에 빨려 들어갔고 몸에는 피가 돌았다. 피가 돈다는 걸 인지하는 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그림을 보면 감각이 생생해졌고, 각종 미디어의 난잡함에 지친 눈을 새롭게 일깨웠다. 나는 유난히 색에 반응했다. 그때까지 주로 색연필과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왔던지라 유화 물감의 눅진한 발색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유화에 매력을 느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간 다양한 전시를 보며 유화만의 매력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머릿속을 지배했다. 가슴 속에서 '한번 해보면 어떨까? 흥미로울 것 같지 않니?'하는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때까지 비교적 사용하기 쉬운 재료들에만 익숙해진 상태여서 다소 두려웠다. 준비해야 하는 재료도 워낙 많아 보여서 통장이 이를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이러한 나의 근심 걱정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유화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또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점이 알게모르게 갈수록그림을 더 잘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유화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방학, 침대에서 한가로이 뒹굴거리며 그림을 그리는 영상을 보고있던 나는 갑자기 유화를 해야겠다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림 영상을 볼 시간에 그래도 한번 해보는 시늉이라도 하는게 낫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생각이었다. 막연하게 유화를 공부하다 보면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도 들었다. 그리고 이때가 아니면 앞으로는 유화에 손도 못대볼 것 같았다. 얼마있지 않으면 방학은 끝날 것이고, 다시 쳇바퀴같이 바쁜 기계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평일에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엄두가 안나고, 주말에는 피로와 귀차니즘이 무얼 하고자하는 마음보다 강해서 침대와 한 몸이 될께 불 보듯 뻔했다! 이렇게 계속 망설이고, 미루다보면 평생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도 해보기도 전에 상상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바쁜 현대인,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번의 붓질로 완성되는 결심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의 붓질로 끝나는 결심도 있었다. 약간의 충동을 곁들인 이 결심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가끔 마주하는 이런 충동성은 다시는 충동적이지 못하게 후회를 부를 수도 있고, 삶을 신선한 공기로 환기시켜줄 수도 있다. 모름지기 후자이기를 바랬다. 


 결국 용기를 내어 동네에 있는 작은 미술교습소에 찾아갔다. 선생님께 다짜고짜 유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비전공자지만 진지하게 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상담을 했고, 결국 도전 해보자고 결정했다.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성심성의껏 얘기를 들어주셔서 상담하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주에는 재료를 준비하고 다음주부터 직접 유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멍했다. 무언가 저질러버린 느낌이었다. 작심삼일로 포기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는거야. 속으로 수줍게 되뇌였다. 작은 도전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이 용기는 하고싶은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열정을 가지고 해보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는 것이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보자. 


그렇게 해서 마냥 그림을 좋아했던 사람의 나름 진지한 유화 입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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