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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12. 2024

어디에나 꽃은 핀다

빌라에 산다고 빌거 빌거 하는데, 세상에 어쩜 그리 끔찍한 말은 잘도 만들어 내는지. 오늘은 그런 빌라에서 있었던 일 하나 얘기해 줄게.


현장은 건물 3층이었어. 부끄럽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서 또 사람을 업어내려와야 하나, 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 사십 줄에 접어든 데다 11월이라 추워서 허리가 삐걱거렸거든. 아무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젊은 여자랑 남자가 있었어.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졌는지 입술이 터지고 안경 코받침에 얼굴이 긁혀서 피를 흘리고 있었어. 계속 몸을 떠는 데다 말은 어눌했는데, 남자가 보여준 복지카드를 보고 선천성 뇌병변에 더해 정신지체까지 있는 장애인이란 걸 알았지. 여자는 옆에서 울고 있었어.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 물었어. 여자가 말했어. ”옆집 사는 사람인데요. “


매일 같이 인사하는 남자가 연 이틀 얼굴을 비치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나 봐. 그래서 삼일 째 되는 날 아침에 고민 고민 하다가 남자의 집 문고리에 손을 얹은 거지. 아, 여긴 빌라 관리 사무소 같은 거 없어. 그런 건 좋은 빌라에만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웃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한 여자의 최선은 직접 손을 쓰는 일이었던 거지.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고, 여자는 발작이 온 뒤로 기진해서 내내 쓰러져 있던 남자를 보고 119에 신고한 거야. ”죄송해요. “ 여자가 말했어. ”잘하신 건데, 뭐가 죄송해요. “ 내가 되물었더니 ”더 빨리 신고할 수 있었는데. “ 하고 얘길 했어. 나는 뭐에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어.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그러니까 우리 사는 집의 크기를 가지고 사람 마음의 크기를 재단하지는 말자. 가난한 동네건 부자 동네건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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