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묘사와 힘 있는 문장으로 기억되다
박완서 장편소설. 웅진지식하우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부족한 내 실력에 새삼 부끄러워 몸부림칠 때였다.
토할 만큼 영어 원서를 보고 나면 잘 써진 한글로 된 글이 너무 그리운 순간이 왔다.
그럼 한밤중에 몇 줄이라도 재미난 소설을 보고 스트레스와 갈증을 풀고 자야 했다.
대부분은 추리 소설이나 연애 소설을 보았지만, 그 때 내 손에 잡힌 책이 이 ‘싱아’였다.
‘사물과 사람의 감정과 사람의 관계를 묘사한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내가 느낀 감상이었다.
그리고 잘 익히는 문장에 대한 나의 갈증이 속 시원하게 풀어졌었다.
하지만 항상 쫓기는 생활이라 차분히 문장을 음미하며 읽지는 못했다.
씨밀레(나의 책지기들과 18년 째 하고 있는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책을 구입할 때, 서가에 꽂혀있는 이 책의 화려한 표지를 보니 저절로 손이 갔다.
아마 글이 좋았다는 느낌만큼이나 내가 제대로 못 읽었다는 기억이 확실히 남아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친구들도 구입하는 걸 다 동의해줘서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나 너무 멋진 글이었다.
특히 ‘묘사란 이런 것이다!’라는 감상을 글 끝까지 가지고 갔다.
작가는 거의 기억에만 의존해 쓴 글이라고 했는데, 그 기억력은 얼마나 좋은 건지 놀라울 뿐이었다.
책 처음 부분에 고향에 대해 그리는 부분에선 넉넉한 자연환경과 그 속에 품어져 자라는 아이의 동심이 파릇파릇 싱싱하게 느껴졌다.
현저동의 지저분하고 부끄럽고 서러운 서울 살이는 숨 막히면서도 절절하게 성장하는 성장통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사상의 혼란기, 생존이 위협받는 벼랑 끝 시간 속에서 고치 속에서 보호받던 아이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며 세상에 던져진다.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쓰게되고야 말거라는 다짐으로 책은 끝이 난다.
이 여운이 다 가시기 전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어보려 한다.
작가의 경험과 그가 바라본 세상을 그린 그림 속에 푹 파묻혀보는 행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