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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Jun 23. 2023

‘다이어트’ 살을 빼기 위함일까? 몸을 위함일까?

 오늘이 32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다란 접시에 신선한 야채를 한가득 담는다. 그 속을 드려다 보면 양배추, 당근, 어린잎, 양상추, 토마토, 사과 등 갖가지 야채와 과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 위에 닭 가슴살과 두부를 곁들이고, 2주 숙성된 바나나식초 소스를 준비하면 간단한 나의 아침식사가 된다. 그렇다. 요즘 나는 다이어트 진행 중이다. 한 달 전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처음 비우기에 이어 지금은 채우기 마지막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삶의 시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빨라진다고 하는데, 최근 인내와 고통을 요하는 한 달의 ‘다이어트’  시간은 1분 1초가 잔인하게 더디고 가혹했다.


 작년 초부터 띄엄띄엄하던 생리가 끝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의 열감과 함께 허리 군살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더니 아랫배는 큰 돌덩이 하나를 안은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그리고 올해 초 ‘피부 묘기증’이라는 두드러기와 함께 무릎관절 통증까지 생기면서 온몸의 불편함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내 삶을 덮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이어트’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몸이 좀 불었네’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두 끼 건너뛰면 몸무게가 제 자리로 돌아왔기에 다이어트는 내 고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갱년기는 달랐다. 하루 이틀을 안 먹어도 몸무게 변화는 없었고, 마음 놓고 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체중이 늘었다. 그래서 나는 오십 년 만에 큰 결심을 했다. 불어난 허리 살이 얄밉기도 했지만,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 ‘단식’으로 몸을 리셋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언니가 효과를 봤다는 다이어트를 추천받아 D-day를 잡았다.


 D-day 첫날 아침, 한 컵 정도의 ‘영양셰이크’를 마시고, 노폐물 배설을 돕는다는 ‘차’를 하루 2ℓ씩 마셨다. 또한 물외에는 커피, 녹차, 음식조리 시  ‘간’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며, 하루 1시간 근력운동 또는 걷기 운동이 필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났건만 몸무게 변화는 없었고, 이제까지 축척된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는지, 활동량이 많은 날은 낮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일반식을 먹지 못하는 다이어트 생활패턴으로 당분간의 인간관계를 협소해지고,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에 삶의 질은 떨어지고 무료해졌다. 그렇게 힘겨운 ‘비우기’ 날들이 지나고,  하루 한 끼의 식사가 허용되는  ‘채우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위대한 첫 끼니를 나는 저녁으로 잡았다.


 그날 밤, 갖가지 채소를 담은 샐러드 한 접시에, 두부와 토마토, 닭 가슴살 그리고  수제 소스를 곁들인 첫 끼의 식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첫 음식으로 살짝 데운 깍둑 두부를 입었다. 아~ 그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갖가지 야채를 탐색하듯 하나씩 소스에 찍어서 맛보기 시작했다. 상큼한 신맛과 약간의 단맛 등 채소 본연의 맛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는 과거 음식의 강한 양념 섭취로 쉽게 느끼지 못한 맛 들이거나, 무심코 지나갔던 ‘맛’ 들일 것이다. 그렇게 한 끼의 식사가 허용되는 여럿 날 지나가고, 두 끼의 식사가 허용되었다. 이렇게 리셋된 몸은 비우기보다 채우기가 중요하다고 하니, 급한 마음에 여러 가지 음식들을 두서없이 섭취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요즘말로 “저탄고단‘ 식생활을 하고 있다. 좀 갑갑한 식생활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지금의 생활방식이 그리 나쁘진 않다.

  식탐이 별로 없는 나였지만, 정말 참기 힘든 유혹은 있었다. 고기를 굽고 요리를 해도 흔들림 없는 나였지만,  ‘갓 지은 밥 냄새’ 그 유혹은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침 한번 삼키고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고비를 넘겼다. 이런 나의 고충과는 달리 가족들의 반응이 아이러니했다. 평소와 달리 ‘간’을 보지 않은 음식이 더 맛있다고 했으며, 한 술 더 떠서 앞으로 입맛이 아닌 손맛으로 음식을 해주길 당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이어트 중반이 넘어가자 내 몸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잠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아침 일찍 눈이 떠지고, 몸은 한결 가볍고 상쾌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얼굴 피부가 맑아졌다는 말을 많이 했다. 과거의 내 생활 리듬은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몹시 힘들어 스스로 ‘저녁형 인간’이라 말하며 게으름을 부렸다. 나도 모르게 다이어트는 내 생활리듬을 바꾸고 있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는 왜 하는 것일까? 살을 빼기 위함일까, 몸을 위함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현대인들은 살을 빼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자도 맞지만, 후자에 더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한 달 이상 진행된 다이어트는 고작 몸무게 2kg 감량했다.(다이어트 판매 측에서는 갱년기에는 체중 감량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결국 ‘다이어트’는 살을 빼주기도 하지만, 몸을 리셋하여 새롭게 길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몸을 길들이기 위해, 신선한 재철 야채와 과일 그리고 단백질 식품과 직접 만든 발효 요거트와 소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되도록 인스턴트식품을 멀리하고, 탄수화물과 튀긴 음식을 조절하려 노력한다. 이런 내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아이들과 남편의 식단도 건강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주부는 집안의 ‘건강지킴이’ 인가보다.


 이번 다이어트로 나는 돈을 지출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생각해 보면, 집안 청소도 게을리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하는데, 출생에서 지금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내 몸을 청소하려 생각하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해 볼 생각이다. 그 시간을 통해 가끔씩 내 몸을 청소하고 고생하는 몸에게 ‘쉼’을 제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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