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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Aug 10. 2023

한여름 땀 속에서 버티는 하루

그림:네이버 이미지

 주말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즐기려 했으나, 축축하게 젖어오는 베갯잇의 찝찝함과 벌써부터 거실을 데우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못 마땅한 듯 몸을 일으킨다. 진 작에 뒷머리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등 뒤로는 ‘주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과 몸 사이 흐르는 끈적끈적한 액체의 불쾌감에 눈살을 찌푸리며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고 ‘툭’ 목으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쓰윽’ 한번 훔쳐 내고는, 긴 목수건을 두르며 가스레인지 앞에 선다. 아침 8시, 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푹푹’ 찌던 한 달의 긴 장마가 끝나고, 아이들 방학과 함께 불덩어리 같은 햇살이 땅으로 내리 꽂힌다. 연일 휴대폰에는 ‘폭염경보’에 대한 안전문자가 뜨고, 그 폭염으로 인한 내 몸의 기력과 열정은 땀과 함께 흘러내려 맥을 못 춘다. 이따금 시큼한 땀 냄새마저 풍긴다. 언제부터 여름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불쾌한 계절이 되었을까? 내 어릴 적 여름은, 방학과 더불어 마을 뒤 개울가에서 온종일 멱 감으며 더위를 식히는 즐거움이 이었다. 그런 여름이 어느 순간부터 줄줄 흐르는 ‘땀’ 때문에 힘겹게 버텨내야 하는 계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땀’이 내 삶 속에 들어온 날부터 얼굴 화장은 엄두도 못 내며, 땀 냄새로 인해 주변 눈치를 살펴야 하는 소심함 등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결혼 전까지 나는 ‘땀’ 많은 체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앞에서 늘 당당했으며, 그 계절을 마음껏 즐겼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의도치 않게 나는 ‘땀 순이’가 되었다. 3월 출생인 첫째와 달리 둘째는 9월 초순에 출산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친정 엄마는 겨울보다 여름 산후조리가 더 힘들다고 하시며, 좀 갑갑하더라도 찬바람 쐬지 말고, 양말은 꼭 신고 다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러나 나는 평소 양말을 갑갑해하여, 집에 들어오면 양말부터 벗고, 차에 타도 양말을 벗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산후조리 때문에 그런 갑갑한 양말을 신고 잠을 자려 하니,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잠든 사이, 양말 뒤축부터 살살 벗기다가 결국에는 발끝에만 살짝 걸치고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모처럼 꿀잠을 잤지만, 다음날 내심 겪어보지 못한 ‘산후 바람’이 두려워 눈을 뜨자마자 조리원 ‘찜질방’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몸조리하는 2주 내내 발에 바람이 들까 봐 부지런히 찜질방을 드나들며 땀을 흘렸다. 그때 내 몸의 땀구멍이 열렸던 것일까? 그 이후의 내 삶이 땀과 함께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냄새나고, 지저분한 땀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그래서 ‘땀의 좋은 점’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땀은 본래 인체의 체온 유지, 보존을 위한 생리현상이며, 뇌의 정상체온 36.5도 유지를 위해 흘린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노폐물과 중금속 배출을 위해 땀의 배출이 필요하다. 만약 인간이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뜨거운 땡볕아래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거나, 돼지처럼 진흙을 온몸에 바르는 듯 젖은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땀의 불편함으로 인해 좋은 점을 잊고 살았다. 생각해 보면, 비 오 듯 솟아지는 땀방울이 끈적끈적하고 불쾌하지만,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헉헉’ 거리 거나, 돼지처럼 진흙을 몸에 바르는 것은,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좀 불편하지만 땀을 흘려야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일까?


 오늘도 여전히 한낮의 기온이 33℃를 넘기며 폭염이 진행 중이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저녁 메뉴인 ‘닭볶음탕’을 하기 위해 불 앞에 섰다. 벌써부터 목덜미 쪽으로 땀방울이 흐르고, 이마에서 볼을 타고 땀 비가 솟아진다. 나는 긴 목수건으로 피부를 밀 듯 땀을 닦으며, 요리를 계속한다. 그 땀은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계속 흐른다. 남편은 에어컨을 켜라고 하지만, 불 앞에서 에어컨 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그렇게 땀을 솟아내고, 씻고 나면 여름의 하루가 지나간다. 이처럼 땀과 사투를 벌이는 지긋지긋한 여름이지만, 나는 나약한 인간이라 자연을 거스를 수 없고, 내 의무인 ‘엄마=밥’ 역할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여름 ‘땀’을 말려주는 가을바람을 애타게 기다린다. 시간이 흐르고 더위가 한풀 꺾이면, 시원한 가을이 오겠지. 그런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주르륵’ 흐르는 한여름날의 땀을 닦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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