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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Dec 12. 2022

고독을 즐기는 현대인

Lauv - Modern Loneliness

올여름에 친구가 10월에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티켓이 생겼다며 갈 생각이 있냐고 제안해왔다. 출연진들 대부분 잘 모르는 해외 아티스트들이었지만 오랜만에 공연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가겠다고 했다.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라는 제목의 페스티벌이었다. 내가 가게 된 셋째 날의 출연진 중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는 라우브(Lauv)였고 찾아들어보니 귀에 익은 노래들이 몇 있었다.  알고 보니 생각보다 더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였다. 공연을 더욱 즐기기 위해 행사 전 두달 여의 기간 동안 출연진들의 노래를 플레이스트에 담아 들으며 지냈다. 노래는 많이 들을수록 익숙해지고 좋아지는 법이라 자연스레 라우브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공연에서 부를 것 같은 셋 리스트를 만들어서 반복해서 들었다.

공연 당일의 날씨는 험상궂었다. 초가을 날씨치고는 쌀쌀했고 비가 왔다 그쳤다 하는 등 야외 행사를 참여하기엔 최악의 날씨였다. 그럼에도 친구와 나는 우비를 입고 즐겁게 공연을 관람 했다.
핀 애스큐, 이하이, 페더 엘리아스, 제레미 주커의 공연이 이어지고 저녁 여덟시가 되어서야 라우브가 무대에 등장했다. 당일은 물론, 삼일 동안 진행되는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무대라는 생각이 첫 등장부터 느껴질 만큼 존재감이 대단했다. 내가 예측했던 셋리스트의 곡들을 전부 다 불러서 뿌듯했다. 공연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나는 라우브의 팬이 되었다.

라우브는 전자음을 가미한 반주에 감미로운 목소리를 입힌 일렉트로팝 노래를 주로 부른다. 빠른 템포의 신나는 노래도 있고 잔잔한 노래도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공연을 즐기기엔 최고의 가수가 아닐까 싶다. 공연 후에 라우브의 노래들을 더욱 심도 깊게 들어봤는데 하나같이 완성도가 높다. 곡의 구성도, 가창력과 음색도 매우 뛰어나지만 나는 가사에 크게 감명을 받고 있다.  

많은 가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한다고 말한다. 가사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든,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든, (가수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하지 않다 하더라도) 가수에게 노래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본인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라우브 또한 그런 가수임에는 틀림없고 특히 그가 직접 쓴 가사가 노골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창작물에 입히는 여러 가지 테마가 있을 것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라우브의 음악 세계를 정의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외로움’이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그의 노래들을 듣고 두어 시간 정도의 공연을 관람했을 뿐이지만, 내가 감히 짚어보자면, 라우브는 극심한 우울증 환자다. (약을 복용한다고 공연 중에도 언급했고 가사에도 많이 나타나 있다.)

나는 항상 외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가끔씩만 찾아오기 때문에 나를 더 처연하게 만들고 이 감정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항상 외롭다는 사람은 본인의 의지로 외롭고 싶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병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외로움은 감추고 싶은 감정이다. 문득 찾아오더라도, 벗어날지는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이겨내야만 하는, 나만의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라우브는 정말로 항상 고독한 사람인데 이 고독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열심히 음악을 통해 표출하고 있는 가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외로움을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기고 있다. 이런 감정에서 나오는 모순을 음악과 가사에 정말 찐득하게 담아내고 있다. 마치 라우브 자신만의 외로움의 우물을 만들어 본인을 처절하게 빠뜨리고 헤어 나오고 싶으면서도 우물 안의 물을 탐닉하는 자기 파괴적인 음악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라우브는 이를 Lovesick attitude라고 표현했다.

고독함이 창작에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창작자는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쉽지 않다. 외롭다는 것은 자립할 수 없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는 자존감 고취에 썩 도움이 되진 않을 터이다. 실제로 나는 라우브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음악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이 감정을 두려워는 하되 숨기지 않고 모두 음악에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 세계를 둘러싸는 키워드가 외로움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제목과 가사에 외로움(lonely, loneliness)이 들어가는 곡들이 많다. 앤 마리와 함께 부른 'Fuck I'm lonely', 'Lonely Eyes' , 'Modern Loneliness' 등이 있다. 이중 내가 공연 전후를 통해 가장 좋아하게 된 라우브의 노래는 단연코 'Modern Loneliness'이다. 멜로디는 신나는데 가사는 그렇지 않다. 혼자 있는 것이 신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듯이. 재밌게도 라우브는 이 노래를 무대에서 춤추며 부른다. 고독은 벗어나야 하는 감정인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감정이다.


Modern loneliness, we're never alone but always depressed.

Love my friends to death but I never call and I never text.

You get what you give and give what you get, so modern loneliness, we love to get high but we don't know how to come down.


결코 혼자가 아니지만 항상 우울한 현대인의 외로움

친구들을 죽을 만큼 사랑하지만 연락 한 통하지 않는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관계에서 그저 취하고 싶을 뿐인데 떠나는 법은 알 수가 없다


—————-


2022 SLOW LIFE SLOW LIVE

고독


슬픈 노래도 사람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

매일 사람들과 살갗 부딪히며 지내도 외로울 수 있다

혼자 사는 그의 집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외로움을 비워둔 그가 노래를 틀고 홀로 춤을 춘다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이 외로움을 찾는 일이라 보았다

외로움은 혼자 사는 집과 인파 가득한 공원 사이의 길목을 정처 없이 오가고 있다

너는 외로움을 피하려 하지 않고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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