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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Jul 02. 2024

自覺夢

글감_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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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짧은 편지를 쓸게.

안녕. 나는 아직도 여기서 너를 기다려.

너는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세상에서 영영 너를 기다리겠지.

우리가 아이처럼 웃고 떠들던 그날을 말이야.

나도 언제부터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이곳에 방문한 뒤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되었지.

늘 주변을 둘러보면 형형색색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장 다채로웠던 건 네가 아닐까?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어.

-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소공포증도 있고 기구를 타면 세상이 거꾸로 빙글 도는 그 느낌을 싫어한다. 마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버리면 바닥이 일어나는 것처럼. 하지만 놀이동산은 좋아한다. 주변을 보면 늘 환하게 웃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밤하늘을 옮겨 놓은 것처럼 환하게 빛난다. 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평소보다 활짝 웃은채로 놀이동산 안을 둘러보며 괜히 머리띠도 써보고 츄러스도 사먹어본다.

 그날은 혼자 놀이동산에 방문했다. 주변에 바다가 위치해 있는지 파도와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간지럽혔다.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바로 이곳이지 않을까? 길가를 가로질러 도착한 놀이동산은 파란색과 흰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오면서 들었던 파도와 바람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은 들뜬 표정이였고, 저마다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음소거 된듯 조용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혼자 놀이동산에 왔다는 사실에 긴장되어 있었고 상당히 들뜬 상태였기 때문에. 가끔 너무 행복하면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세로 줄무늬 옷을 입고 흰색 장갑을 끼고서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환영해요.’라고 말했다. 우리 어디서 만난적이 있었나요? 그럴리가 없었다. 나는 혼자 놀이동산에 처음 오니까. 그래서 묻지 않았다.

 그사람은 나의 손에 파란 솜사탕도 쥐어주고, 파란 풍선과 흰 풍선도 손목에 묶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미아가 된 기분이었지만 호의를 거절하면 실망할 것 같았다. 왜인지 그사람의 눈은 슬퍼보였으니까. 입은 웃고 있는. 맞아. 삐에로 같았다. 곱슬 머리를 하고 파란 코를 낀 파란 삐에로. 그래서 나도 웃었다. 따라 웃다보니 웃으며 온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그사람은 나를 놀이동산 입구로 다시 데려다 주었다.


 ‘하루가 참 짧죠?’

 ‘네. 그래도 덕분에 감사했어요.’

 ‘다시 놀러오세요. 그때는 더 재미있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그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파도와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나는 길가로 나왔다. 참 이상했다. 놀이공원은 시끄러워서 잘 안 들렸던건가? 아닌데. 안에도 조용했었는데. 나와 그사람의 웃음 소리만 가득했었는데.

 요란한 팡파레 소리가 났다. 놀이공원의 메인 궁전 위로 전광판에 ‘SEE YOU NEXT TIME’라는 글자가 한 자씩 새겨졌다. 그때 내 입에서는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을까? 나만 아니었다면. 라는 생각을 아직까지 한다.

 

‘이거 꿈 아니야?’


 순식간의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이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의 눈 아래 그려진 파란별과 흰별이 뭉개졌고, 눈물은 파란색과 흰색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겠냐만은, 그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이공원의 전광판 속 다음에 또 만나자는 글자는 공중으로 흩어지고 지직. 지직. 분절음과 함께 전광판. 궁전 꼭대기에 있는 하얀 깃발. 파란 지붕. 순서대로 무너져 내렸다. 내 손목에 묶어있던 풍선이 터짐과 동시에 무너진 궁전 위로 풍선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바닷물은 새까맣게 변했고, 일순간 파도가 요동쳤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도 먹색이 되었다. 물론 파란색도 사라지고 회색과 흰색만이 남았다.


 ‘어서 일어나요.’

 ‘괜찮나요? 지금 세상이 무너지는데요.’

 ‘저는 괜찮아요.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거예요. 오늘처럼.’

 ‘너무 고마웠어요.’

 ‘저는 행복했어요. 파란색과 흰색이 아닌 무지개색을 볼 수 있어 행복했어요.’

 ‘왜 계속 우세요?’

 ‘저는 언제나 여기 있어요. 빨리 돌아가세요.’


 눈을 떴다. 놀이공원에 가볼까.



잊지 못하는 꿈 있으신가요? 제게는 있답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는 그런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속으로 가기 전 오늘은 어떤 꿈을 꾸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가능하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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