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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수 May 08. 2023

고대 한국어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 연구자로서의 배경을 소개해 봅니다

안녕하세요. 윤희수입니다.


저는 2020년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부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마친 뒤 지금은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에서 박사 과정 학생으로 류큐어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류큐어학이란?


일본 열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류큐 제도(南西諸島)에서는 지역에 따라 아마미어(奄美語), 오키나와어(沖縄語), 미야코어(宮古語), 야에야마어(八重山語), 요나구니어(与那国語)라는 도합 5개의 전통적인 언어가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들 언어를 류큐 제어 (계통적으로는 일본·류큐어족 류큐어파)로 통칭하며, 류큐어학은 바로 류큐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모든 다른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류큐 제어의 연구는 그 언어를 기록하여 보존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치는 가치가 있지만, 동아시아 역사언어학의 맥락에서는 고대 이전의 일본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단서라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가집니다.


일본어학에서 '고대 일본어(上代日本語)'라는 시기 구분은 '고사기' (712), '일본서기' (720), '만엽집' (~759)에 수록된 운문을 주된 자료로 하므로, 대체로 8세기의 언어를 가리킵니다. 8세기 이전에도 단편적인 기록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류큐 제어와의 비교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일본어학에 있어서 6세기 말쯤에 '중모음 상승(mid vowel raising)'으로 불리는 발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정설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학자들이 류큐 제어와의 비교를 통해 그 단서를 얻고 나서야 구체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발음 변화는 아주 미묘한 것이어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찾아야 할지를 알고 나서 보면 하나씩 그 증거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습니다만, 저는 고대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 류큐어학을 하게 되었는가


일본어학에 있어 류큐 제어의 중요한 가치는 8세기 이전의 일본어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류큐어학과 고대 한국어 연구의 관계를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 연구에 있어 고대 일본 자료는 매우 중요한데,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 중반까지이기 때문에, 고대 일본어의 주된 문헌들이 나타나는 시기인 8세기는 너무 늦습니다. 고대 한국어 연구에 참고하기 위해서는 3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일본어 발음의 변천을 체계적으로 알아내야 하고, 그러한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류큐어학에 대한 고도의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면, 서기 471년 또는 531년의 유물인 '이나리야마 고분 출토 철검(稲荷山古墳出土鉄剣)'에 새겨진 115자의 명문 가운데 足尼라는 칭호가 철검이 만들어진 당시의 일본어로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류큐어학이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일본어학에서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8세기 고대 일본어의 문헌이 넘치도록 충분한 덕분에, 그 이전 시기의 일본어에 대해서도 8세기 일본어의 연구로부터 확립된 지식을 통해 대강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足尼 역시 8세기의 형태로는 sukune라는 것을 이 분야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 연구를 위해서는 足尼가 서기 500년 전후에 어떻게 발음되었는지, 그리고 그 일본어 발음을 왜 하필이면 '족(足)'과 '니(尼)'라는 한자를 써서 표기했는지를 아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足尼로 표기된 단어 자체는 고대 한국어와 (아마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그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서기 500년경의 일본어의 발음과 표기 체계를 알 수 있고, 이는 (제가 생각하기에) 고대 한국어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일본 측 역사 기록에 한반도의 인명과 지명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6세기 일본인의 귀에 고대 한국어가 어떻게 들렸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들렸는지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충 그런 사연으로 고대 한국어를 연구하던 저는 류큐어학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학문적 마음의 고향은 고대 한국어 연구이고, 이 블로그에서는 주로 고대 한국어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 연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고대 한국어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며 그 연구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인 태도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어나 일본어의 음운사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온 데 반해 고대 한국어의 연구는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미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7세기 중반까지 중국어와 일본어의 접촉은 대체로 고대 한국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국어학과 일본어학이 거둬온 성공은 고대 한국어 연구에 있어서도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언어였고, 그 모습이 밝혀지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은 큰 손실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기록이 고대 한국어의 모습을 밝혀내는 데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 등 한국의 자체적인 역사 기록과 금석문 자료에 더해, '삼국지', '일본서기' 등 외국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언어학적 이해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킨다면 고대 한국어 연구의 진전은 절대로 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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