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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수 Jun 17. 2023

실성 마립간의 진짜 이름을 찾아서

실성 마립간은 사실 실성이 아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제18대 국왕인 실성 마립간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마립간' 표기로 통일합니다)은 즉위하자마자 선왕의 아들 미사흔을 일본에 인질로 보내버립니다. 실성 마립간은 고구려 광개토왕 재위 초에 고구려에서 인질 생활을 하던 신라 왕족인데, 선왕인 내물 마립간에게 아들이 3명이나 (눌지, 복호, 미사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어리다는 이유로 내물 마립간 사후 왕으로 추대됩니다. 실성 마립간이 즉위하기 2년 전인 서기 400년에 신라는 백제·가야·일본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큰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고구려에서 대규모의 지원군을 보내준 덕분에 무사히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정통성이 부족한 실성 마립간은 큰 전쟁을 치른 일본과 화친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선왕의 아들로서 왕위에 대한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미사흔을 일본에 보내버린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내물 마립간의 또다른 아들 복호도 고구려에 보냅니다).


일본 측 기록에서는 이 사건이 '일본서기' 권9의 족중언(足仲彥, 고대 일본어 tarasi naka=tu pîkô [다라시나가두비고]) 9년 10월 기사를 통해 다뤄지고 있는데, 해당 기사를 보면 신라는 일본의 침략에 항복한 뒤 미사흔을 인질로 내놓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서기 400년의 전쟁은 고구려군의 승전에 따른 신라의 구원으로 종결되었으므로 이러한 서술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고, 고대 일본은 이 시기에 아직 문자로 된 역사 기록을 가지지 못했다고 여겨지므로, 성공적이었던 과거의 신라 약탈에 대한 구전 기록과 미사흔이 인질로 일본에 파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뒤섞여 이러한 잘못된 기사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특히 해당 기사의 말미에 나오는,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와 함께 일본에 항복하며 "이제부터 오래도록 서쪽의 신하 나라가 되겠다 (從今以後永稱西蕃 종금이후 영칭서번)"고 했다는 맹세의 내용은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백제 아신왕이 광개토왕에게 항복할 때의 맹세 '종금이후 영위노객(從今以後永為奴客)'을 떠오르게 하는데, 고구려의 역사 기록을 소재로 삼아서 일본인들이 자국을 높이기 위해 사실 관계를 뒤집는 방식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편으로 또 재미있는 점은 '일본서기'에서 당시 신라 왕을 '파사매금(波沙寐錦)'이라고 적고 있는 점입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를 '삼국사기'의 왕계에서 신라의 제5대 국왕인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과 동일 인물로 보고,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이 신라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기에 엉뚱한 왕의 이름을 끼워넣었다는 식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매우 자세히 검토해 보면 심상치 않은 부분이 드러납니다.



'삼국유사'의 왕력에서는 실성 마립간의 다른 이름으로 '실성(實聖)' 이외에 '실주(實主)'와 '보금(寶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이름이 실제로 여러 가지였던 것은 아니고, 같은 고대 한국어 발음을 서로 다른 한자 표기로 적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실성 마립간의 경우는 약간 이상합니다. '성(聖)'과 '주(主)'의 이표기, 또는 '실(實)'과 '보(寶)'의 이표기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자음과 한자의 뜻이 모두 무관한데 글자의 모양만 비슷하다면, 의도된 이표기가 아니라 오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聖)'을 흘려쓸 경우 윗부분이 완전히 단순화되어 '주(主)'처럼 보이며, '실(實)'과 '보(寶)'는 가운데 부분을 제외하면 매우 유사합니다.


어떤 것이 오자이고 어떤 것이 원래 의도된 글자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은 약간 복잡합니다. 예를 들면 '성(聖)'과 '주(主)' 중에서는 '성(聖)'이 원래 글자이고 '주(主)'가 오자인데, '보금(寶金)'이라는 표기에서 '금(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권34에는 신라의 성량현(省良縣)이 고려 시대에 금량부곡(金良部曲)으로 개칭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금(金)'과 대응하는 것이 '주(主)'가 아니라 '성(省)'과 발음상 유사한 '성(聖)'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금(金)'을 한자음이 아니라 '쇠'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 단어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실(實)'과 '보(寶)'는 제3의 표기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름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내물 마립간의 아들이자 실성 마립간이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복호(卜好)의 이름이 '삼국유사'에 '보해(寶海)'로 전해진다는 점에서 '보(寶)'라는 글자는 신라에서 왕족의 이름 표기에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實)'이라는 글자는 다른 이름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아무래도 '보(寶)'가 더 믿을만합니다. 실성 마립간은 사실 보성 마립간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호가 '파호 갈문왕(巴胡葛文王)'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신라에서 사용된 한자음으로 '보(寶)'와 '파(巴)'가 같은 고대 한국어 발음을 표기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발음이 비슷한 '파(波)' 역시 '보(寶)'와 같은 발음을 적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서기'의 '파사매금(波沙寐錦)'에 대해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실성 마립간의 이름은 사실 '보성(寶聖)'의 오자이고, 이 '보성'의 이표기 가운데 하나가 '파사(波沙)'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해 전설 비폐모음 *e [ㅔ]의 존재를 긍정한다면, '성(聖)'의 고대 한국어 한자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se [세]가 됩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사(沙)'의 고대 한국어 한자음을 *sa [사]로 간주해 왔지만, 이것은 오류이며, 물론 *sa [사]로 쓰인 경우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se [세]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컨대 '고사부리(古沙夫里)'를 웅진 도독부에서 '고사주(古四州)'로 개칭한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e [ㅔ] > *i [ㅣ]의 모음 상승에 의해 이해되어야 합니다. 특히 고구려 초기의 한자 표기에서 고대 중국어 *-ˤ(r)aj 발음을 가졌던 한자를 모두 고대 한국어 *e [ㅔ] 모음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것은 기존 연구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서기'에 기록된 실성 마립간의 이름 '파사(波沙)'는 고구려식 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해당 기사를 보면 신라, 고구려, 백제의 왕이 모두 일본에 항복하면서 "이제부터 (從今以後) 오래도록 엎드려 마굿간지기가 되겠다"라거나 "이제부터 (從今以後) 오래도록 서쪽의 신하 나라가 되겠다"라는 내용의 맹세를 하는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것은 백제 아신왕이 광개토왕에게 항복할 때 한 맹세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창작했을 것이고, 이런 치욕적인 맹세가 백제의 역사 기록에 구체적으로 언급될 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서기'의 편찬자가 이 부분을 작성할 때 고구려의 역사서를 참고했을 개연성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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