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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지 Oct 24. 2023

<성적표의 김민영> 나의 미워하고 좋아하는 친구

20대 시절 종종 친구의 자취방에 혼자 남겨져 있으면 어쩔 도리 없이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고는 당황스럽게도 갑자기 그 친구가 애틋해졌다. 그저 물건일 뿐인데도 한 사람의 물건 더미에 압도되면 내가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미지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잘 모르게 된 친구의 비밀을 캐는 것 마냥 책장을 눈으로 훑어 내려가고, 헝클어진 화장대 위 바닥이 보이는 아이섀도를 구경하거나 처음 써 보는 샴푸의 뒷면을 읽어보며 친구에 대해 곱씹곤 했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속 정희는 친구 민영의 집에 갑자기 혼자 남겨진 후 민영의 물건을 뒤적거리다 결국 일기까지 읽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간 민영에 대한 미움이 걷히고 만다. 문보영 시인은 이렇게 썼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라고.


<성적표의 김민영>에는 대학 생활로 달라진 서로의 모습에 갈등을 겪는 스무 살 친구들이 나온다. 편입을 준비하며 자신의 효용을 찾는 민영과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정희. 민영이 현재를 산다면 정희는 앞서가는 민영의 뒤통수를 본다. 관계에는 언제나 시차가 존재한다. 내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매던 때에는 정희처럼 '우리'를 붙잡고 있었고, 정신없이 현실을 걸어 나갈 때는 민영처럼 세상 다 안다는 듯 재수 없게 굴며 충고를 빼놓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와 내 친구들은 긴 시간 동안 번갈아가며 서로의 뒤통수를 쳐다봐 왔던 것만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갑자기 영화과에 입학할 거라고 했다. 전에는 앱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즉흥적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던 불나방 같은 애였다. 당시 나는 첫 책을 준비를 하며 나름대로 내 세계를 만드는 고통과 기쁨에 심취해 있었다. 이제야 어떤 길목에 들어섰다고 믿었던 나는 친구의 결정이 충동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불나방 같은 그 성향이 늘 경이로웠지만, 그 무렵 우리의 관점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마다 묘하게 어긋나며 서로의 차이를 하나씩 확인했다. 그날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설전이 오갔는데, 나는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내고 말았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친구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이 엉뚱하게 터져 나왔던 거다. 너는 왜 그렇게 대책이 없냐고, 언제까지 옛날이야기만 할 거냐고, 왜 변한 나를 인정하지 않냐며 속으로 하던 생각이 행동으로 삐죽 튀어나왔을 터였다. 말다툼을 하고 이상하게 술자리가 끝났던 날 밤, 너는 왜 화내지 않았냐는 내 문자에 불나방은 이런 답장을 보냈다. '너를 오래 알았기 때문에 그냥 네가 이해되더라.'


다시 영화로 돌아와, 정희는 민영의 집을 떠나며 성적표를 남긴다. 성적표 속 여러 항목에는 민영에 대한 불만과 애정이 동시에 담겨있다. 정희는 민영의 '인간관계'에 D를 줬지만 '마음과 행동'에는 A를 새겨 넣으며 너는 나를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봐주는 느낌이 든다고,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고 썼다. 정희는 민영과 함께 한 하루로 민영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민영의 총체적인 모습을 봐준다.


언제나 미움보다는 사랑이 많은 내 친구도 까다롭고 뾰족한 나의 일면이 아닌 다른 부분을, 어느 정도는 봐줄 만한 모습만을 봐주었던 것이다. 내 일기장을 들킨 적도 없는데 어째서 불나방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던 걸까. 어째서 내가 다 아는 척 재수 없게 굴어도 천진했던 여고 시절만을 떠올리며 관대해지는 걸까. 그날 내가 받은 문자는 불나방이 남긴 후한 성적표였다. 엉망으로 치른 시험에 대해, 여러 사정을 고려하고 미화된 과거까지 끌고 와서 사려 깊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전체를 본다는 것은 '보기'보다는 '상상력'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뒷면을 상상하고, 과거의 좋은 추억으로 현재를 재구성하는 능력. 이렇게나 품이 드는 과정을 기꺼이 감내해 준 불나방의 사려 깊음을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서 우리의 시차를 또 한 번 실감한다.


십 년 전, 수업 간 불나방의 자취방에 홀로 남아 기다리던 날에도 오늘처럼 불나방에 대해 생각했다. 침대 위에 누워 쏟아질 것만 물건들을 바라보며 내게 말하지 않는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가늠해 봤던 것 같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 애의 공간에서 꼼짝없이 그 애에 대해 생각했던 순간이다. 그 후로 불나방을 총체적으로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친구를 내 뒤에 세워두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이렇게 뜬금없는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그 애의 뒤통수를 쳐다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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