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똑 떨어져서 나는 살이 빠졌다. 당연한 일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집에서 해결하고 나가서 저녁은 그냥 패쓰, 하는데 살이 안 빠질 리가 없다. 어지간하면 걸어 댕기는데 살이 안 빠질 리가 없다. 간식을 사 먹을 수가 없으니 살이 빠졌겠지. 술도 비자발적으로나마 끊었으니 팔할은 술로 구성되었던 내 살들이 소멸해갔음은 자명한 일이다.
돈이 똑 떨어져서 나는 건강해졌다. 어디에선가 몸이 아프면 큰돈이 깨진다는 글을 읽고는
전에는 줘도 안 먹던 건강식품을 슬금슬금 챙겨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남자에게 좋다는 흑마늘까지.
제일 돈안드는 운동이 뭘까 생각하다가 등산을 시작했다. 돈이 똑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월급이란 걸 받던 시절에 나는, 운동조차도 쿨하고 있어보이는 곳에서 해야만 되는 인간이었다. 하여 무려 일 년 어치의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놓고 , 그리고는
단 하루 나갔던 것이다. 단 하루.
쨌든 나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생전 처음 자발적으로 땀이란 걸 흘려 보았다. 더럽게 힘들었다. 오르면서 이 등산로를 추천해준 oo과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산, 그리고 나를 잘라서 지금 이 시각 등산을 하게 만든 회사에게 쌍욕을 퍼부었고 더 나아가 나를 아프게 했던 첫사랑과 끝끝내 D+란 점수를 줘서 재수강을 할 수 밖에 없게끔 나를 엿먹인 어디 사모님이 된다는 누구누구와 어릴 적 루루삐삐 별장을 사주지 않았던 엄마에게 회한과 통한과 절규를 마음속으로 내질렀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껍질째 와작 베어 먹는 사과는 맛이 있었고 조금은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돈이 똑 떨어져서 나는 가족과 사이가 좋아졌다. 아침식사는 가족과 함께 했으며, 열시 이전에 재깍 귀가하였다. 연례행사로 하던 빨래 널기나 설거지 따위도 되도록 하려고 했다. 엄마의 심기를 건드려서 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집에 일찍 들어오니 늦둥이 남동생과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내방으로 강아지같이 달려와 이런저런 천진난만한 이야기를 하는 남동생 덕분에 나는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손닿는데 보이지 않으면 사서 또 잃어버리기를 반복하던 나는.. 이제 자체 수급을 해야겠기에 무언가 필요하면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사 이후 손대지 않은 서랍장 안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신기하게도 필요한 물건은 서랍 어딘가에서 ‘털면 다 나왔’다. 손댄 김에 시작한 서랍 정리는 대대적인 방 정리로 이어졌고 부모님은 내 정신 상태까지도 드디어 카오스상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신 것인지 현저하게 잔소리를 줄이셨다.
결론은 ‘뭐..,어,어쨌든 감사하다구요.흥!’ 이라고 수줍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누구한테 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있다면, 신에게. 다만 더 열심히 쓰고, 열심히 글을 팔아야하는 이유가 생긴 것 같다.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알아차린 이 소중한 것들을 오랫동안 지키며 살고 싶어졌으니까 말이다.
여기까지가 약 12년전에 쓴 글이다. 처음으로 다니던 직장엘 잘리고 나서 한동안 꽤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택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어쨌든 저 이후에 내 삶이 어떻게 펼쳐졌을까? 사실 저런 것들이 몇 번 반복되었었다.
그러니까, 돈이 들어왔었다가 싹 말라버리는 경험들 말이다. 그리고 그 규모가 점점 커졌었다. 처음에는 돈 없는 취준생 정도였다가, 직장엘 다닐 때에는 늘상 돈이 부족한 정도였다가, 자영업을 시작하니 빚이 생겼다. 물론 팬데믹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사실 코로나 핑계를 딱히 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후에도 금전적으로 한번씩 쫄리는 상황에마주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하는 경험들이 모두 영혼의 성장을 위한 계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상황이 달리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성향이라는게 사실 이렇게 쫄리는 상황 아니면 잘 바뀌질 않기도 하다.
이래도 계속 고집부릴래?이래도?
하면서, 삶이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왔던 느낌이다.
근데 어쨌거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 아직 큰 틀에서 내가 더 봐야 할 부분이 있는거다. 사실 이번 텀에 돈이 없어지는상황에서 내가 느껴지는 것은 12년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다만 그 명료함이 다르달까.
이번 텀에 느끼게 된 것은
1. ‘나에게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데 사실 이건 예전에도 느꼈던 것이고, 꾸준히 그 방향성으로 삶을 만들어오고는 있었다. 다만 이번 텀에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내가 스스로 못 뚫던 막을 뚫는 용기가 필요했었다. 정말로 어렵고 두렵던 그것을, 그 막을 나는 이번에는 뚫을 수 있었고, 그동안 애매하게 내 오던 용기를 이번에는 이번에는 온 마음을 담아 낼 수 있었다.
애매하게 돈을 벌며 연명해갈 때는 그 안전함에 숨고 싶었었다.(딱히 안전한것도 아님), 오히려 그 애매한 안전함이 내가 진짜 하고 싶던 것을 하는 용기마저 점점 잊어가게 만들었던 것 같다.
2. 외부로부터 나의 모자람을 채우려고 급급하기 보다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원래 갖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십수년 전에 이미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나는 아직도 너무도 모잘라’라는 생각이 내 영혼의 근간에 가득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직 모자르다’란 생각의 뿌리는 최근까지도 이어졌었다. 나는 자존감이 너무나 낮았기에, 성장이라는 것에 집착하듯 목매며 스스로를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이만하면 되었다’란 생각이었다. 스스로를 갈고 닦는 건 좋지만 거기에 이렇게까지 총력을 기울이는 건 그냥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거였다. 그리고 용기가 없는 거였다. 내가 갈고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 두려웠던 거였다. 그래서 그동안 글 한줄 쓰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거였다. 그치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더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더 숨을 수도 없다.
3.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최대치로 활용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1번, 2번에 대해서 명료하게 생각이 정리가 되니 예전에는 시도해볼 엄두조차 못 내던 것들에 대해 시간의 지연 없이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도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혹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자꾸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끌어내려지는 바람에 중도에 그만 둔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 숨은 잠재력까지 모두 끌어내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살며 행복해질 때라는걸 느꼈다.
4.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이 아주 큰 부분이고,나에게는 특히 의미가 더 큰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동안 목에 칼이 들어와도 ‘혼자 해결해야 된다’ ‘나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라는 혼자만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고 미련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 신념으로 인해서 목구멍에 칼이 들이대지는 것 같은 상황이 와도 절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뭔가 그런 상황을 혼자 극복하면 멋진 초인이 되어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내 집착이었음을 알겠다. 나에게 그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은
‘도움을 청해보라, 남과 함께 좀 더 부드럽게 지나가 보라’
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말은 나좀 도와줘,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내가 겪던 어려움을 민폐라고 여기지 않을 사람들이, 날 이해하고 지지해주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도와줄 사람들이 내 주변엔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혼자 끙끙대며 외로워하고 혼자 피해의식에 빠져서 세상과 등을 지지는 않겠다.
5.풍요로움은 돈과 상관없이 느낄 수 있다. 사실 십수년 전에 내가 느꼈던 결핍감이, 나는 나의 환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내 주변에는 잘난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대적 박탈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결핍감은 그런 상대적인 박탈감이 아니라 ‘애초에 결핍감이 뼛속 깊이 자리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핍감을 느낄 만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내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 결핍감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가 사실 내 이번생 전체를 관통하는 숙제이자, 내 영혼이 이번생에서만큼은 극복하고 싶던 과제였던 것 같다. 풍요로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다를거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특히 ‘나의 빛으로 진정 용기 있는 한 발을 내딛는 것’이 나의 결핍감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는 길이기도 했고, 어떤 조건과도 상관 없이 풍요로움을 느낄수 있는 상태가 되는 길이었다.
6.그럼에도 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5번까지를 느끼시는 분은 의외로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어느정도 창조력이 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풍요를 잘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딱히 돈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돈돈거리기도 하지만 딱히 돈 자체에 욕심이 있다기 보다는 ‘내가 진정 풍요로움을 느낄수 있는 상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를 돈이 충족해준다고 믿는 경우도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난 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도 풍요로워’하는 사람이라면 딱히 욕심 내지 않고 소비를 줄이며 살아도 만족도는 클 거다. 사실 내가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이고, 돈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강했으니 옛 선비나 도인들처럼 안빈낙도의 삶을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최고의 선으로 삼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치만 이번생에 펼쳐진 나의 삶을 봤을때는 이제는 그마저도 벗어나야 할 굴레같다. 담백하게, 돈은 그냥 필요한 것이다. 돈과 풍요로움은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잘살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제한적 사고였고, 더 큰 창조를 막는 굴레였던 것 같다.
삶에서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사람이 좌절에 빠지기가 쉽다. 왜냐하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해 봤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삶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단순히 방법론만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의식의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 그 근간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내가 어디에 집착이 있었을까?’ ‘나는 어떤 집착으로부터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의 관점으로 삶을 복기해보면 좀 더 정리되는 지점도 많았고, 다음 스텝에 대한 막연함도 조금 줄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혼자체가 갖고 있던 결핍감을 극복했고, 그 극복한 에너지로 다시금 내 삶의 풍요를 만들어가보려고 한다.
어려운 와중에도 자신만의 길을 가시는 분이 아주 많아 보이는 요즘, 마음 깊이 응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