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고양이들 38 / 예치 3-1
일요일, 당직이었다. 오후 내내 길고양이 사체 치우기, 너구리 사체 치우기, 공사 소음 민원 등을 해결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었지만, 그날은 민원 전화일지 몰라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 공원 캣맘 J님의 친구 H라고 하는데요.”
H님? 전에 한번 J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옆의 아파트 캣맘이었지?
사실, 두 달 전 다친 고양이에 대한 병원비용과 중성화, 그리고 리리까지 내게 떠넘긴 J님을 차단해 놓은 상태였다. 계속 J님의 해결사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연락을 받아도 마음만 아플 뿐, 더 이상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오다니.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일까? 예상대로 통화 내용은 심각했다.
공원 고양이, 예치가 알 수 없는 사고로 다쳐 병원에 있다는 거였다. 병원에서는 척추가 부러졌다고 하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리리 때는 아예 입원도 안 시켰었는데 이번엔 그래도 입원은 시켜놓은 모양이었다.
척추가 부러졌다? 이것은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다. 사실 수술은커녕 회복조차 불가능할 수도 있다.
공원에는 세 명의 개냥이가 있었다. 모두 나타난 시기가 다른 치즈 고양이다. 리리. 예치, 카레 중에서 리리에 이어 또 예치가 사고를 당하다니. 이럴 수가!
이제야 리리를 입양 보냈는데. 리리는 두 달이나 입원했었다. 그때도 J님이 연락했었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 골절 수술을 하고 완치되었지만 입양할 사람이 없었다. 합사되지 않은 고양이가 있던 우리 집에 2주 데리고 있다가 언니 집에 입양 보낸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과 입양을 온전히 내가 책임졌다. 그런데 또 내가 맡는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직원 동아리의 회비로는 공원의 사료 값만 겨우 충당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고민 후 결국 다음 날 아침, H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치를 지금 그 병원 말고 전에 리리가 입원했던 병원으로 데리고 오세요. 그렇게 하시면 제가 예치를 맡을게요.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리리를 치료했던 그 병원이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병원 원장님은 길냥이들을 위해 할인도 많이 해주고 치료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 그래서 한 가지 더, 나는 조건을 내걸었다. 예치를 나에게 맡기는 대신, 공원에서 더는 개냥이를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매일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과 J님이 간식을 주는 그 모임을 해체하라고 했다.
사실 카레와 예치, 리리까지도 처음부터 그 정도로 개냥이는 아니었다. 몇 달째, J님과 그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도 넘게 모여서 얘기하고 간식을 주기 시작한 후부터 확실히 더 사람을 따랐다. 오후 8시경이었던가? 그때가 되면 공원의 모든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렇다. 알고 있다. 그분들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안쓰러운 마음에서 하는 일이란 것을.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하지만 문제는 그들만 공원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공원은 누가 언제 나타날지 전혀 알 수 없는 공간이다. 길에서 개냥이는 훨씬 더 위험하다. 동물학대자가 나타났을 때 전혀 대항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따라갈 수 있다. 교통사고의 위험도 크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차도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이미 걱정스러운 사고가 계속 나고 있던 터였다. 급식터가 내팽개쳐지고 부숴져서 신고 한 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게다가 **사이트에서 고양이를 돌본다고 인터넷에 올려 난리가 나지 않았던가?
도대체 공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단지 뺑소니 교통사고가 연달아서 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동물 학대자라도 있는 것일까? 경찰서에서는 급식터 공공기물 손괴에 대해서 3개월이 넘어서야 미제사건으로 넘긴다는 종이 한 장을 보내주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J님이 아니던가. J님의 친구 H님은 전달하겠다고 했고 곧 생각해 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예치를 기다렸다. 한숨만이 나왔다. 리리 때보다도 훨씬 치명적인 사고라서 더욱 난감했지만, 외면할 수는 없다. 일곱 달 전 공원에 처음 나타났을 때 ‘예치’(예쁜 치즈 고양이)라는 이름도 내가 지어준 것이잖아.
“유기묘 같아요. 애기가 손을 타요.”
처음 발견한 것은 J님이었다. 공원에 나타났을 때 예치는 두 달 정도 되었을까? 노란색의 치즈 고양이, 예쁘고 개냥이고 애기라서 부단히 입양을 추진했지만 되지 않았다. 6개월이 넘어 중성화를 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귀가 잘려, 밸리와 카레 사이에서 같이 놀았었지. 리리가 나타났을 때 돌봐주고 같이 다니던 예치였는데. 이제 9개월 령이던가? 그런데 척추가 부러지다니!
다시 H님의 전화가 울렸다. J님은 예치를 데려올 수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고양이 후원하는 곳을 찾은 것 같았다. 그곳의 도움을 받아 24시간 동물병원으로 옮긴다고 했다. 전날 저녁에 갑자기 후원협회랑 연락이 닿아서 병원을 옮긴다고, 어찌 됐든 협회가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예치는 아마 살아나더라도 평생 누워서 살아야 한대요.”
며칠 뒤 H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너무 심하게 다쳐 수술할 수가 없다고 한다. 상반신과 하반신을 잇는 척추가 부러져 어쩌면 치료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다. 천행으로 살아난다 해도 척추 아래로 하반신 마비가 될 것이라 했다. 최선의 결과가 하반신 마비라고? 어쨌든 J님과 그 협회는 전력을 다해 치료하고 있던 터였다. 고맙긴 했지만,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도시의 길고양이에게 교통사고는 주요 사망 원인이다. 로드킬이 이렇게 많다면, 다치는 고양이들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많겠지? 일반적인 경우라면, 만약 캣맘에게 구조가 되지 않았다면 신고가 된 다친 동물들(신고가 되지 않았다면 어디론가 사라져 죽는다. 고양이들은 아프면 숨는 본성이 있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로 옮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이름처럼 동물보호나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유기된 동물들을 잠시 관리하는 곳이다. 찾아가지 않은 동물들은 아프지 않은, 건강한 동물이라도 2주간의 공고 후 안락사하게 되어있다. 그곳으로 갔다면 예치는 어떠한 삶의 가능성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누워서라도 살아간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할지라도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 누워서 살아갈 수나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비용과 시설, 인력은 있나?)
끝도 없는 물음표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