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고양이들 39 / 예치 3-2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노후 된 집 하나가 보였다. 나는 차를 그 앞에 세웠다. 산중턱, 옆에는 아무런 건물도, 표지판도 없다. 산속에 덩그러니 3층짜리 주택하나가 전부였다.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 짙은 황색의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유리창은 모두 블라인드가 쳐있어 적막해보였다.
“여기예요? 버려진 빈집 같아요.”
나는 H님을 보며 말했다. H님은 전화를 해보더니 맞다고, 곧 관리자가 나올 거라고 한다.
이렇게 산속이라니. 극도로 보안에 신경 쓴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이 고양이 쉼터인걸 알게 된다면 이곳에 버리고 갈 테니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오히려 안심하면서.
〈예치, 잘살고 있어요. 다행히 **쉼터에 입소하게 되었어요.〉
공원 캣맘 J님과 후원협회가 예치를 맡은 이후 두 달이 지났다. H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문자 마지막에 후원 협회의 홈페이지가 링크되어있다. 협회의 게시판에는 그곳에서 운영하는 고양이 쉼터에 입소하게 된 아이들의 동영상이 날짜별로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H님은 J님의 지인으로 우리 공원 근처 아파트 캣맘이다. 2년 전 거기서 예치처럼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 고등어태비를 그 곳 쉼터로 보냈었다고 했다. 이번에 예치도 H님이 소개시켜주었다지? 나는 함께 봉사 활동하러 가자고 제안했고 H님도 그동안 가본 적이 없다며 찬성했다. 별이도 같이 가게 되어 3명이 서울 인근 소도시에 위치한 ** 고양이 쉼터로 출발했다. 토요일이었고 막히지는 않아서 1시간 반 정도 걸렸었나.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따라 운전하다보니 산 한 가운데에서 네비가 멈췄다.
머리에 꽃무늬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여자 분이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준비해간 사료와 캔 박스를 별이와 나눠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특유의 고양이 화장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6마리 집사인 나와 별이도 숨쉬기 힘들었다. 여기 총 150마리라고 했지? 고양이가 깨끗한 동물이기는 하지만 150마리 중에는 별별 아이들이 다 있을 터였다. 쉼터에는 봉사자가 한명밖에 없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인 봉사자가 우리를 안내했다.
“1층에는 사람하고 좀 친한 아이들이 주로 있어요.”
우리가 다가가자 열 마리 정도, 호기심 많은 고양이들이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그보다 더 많은 고양이들은 벽 쪽 철창에 들어가거나 구석진 곳으로 숨었다. 50평쯤 될 듯싶은 마루가 깔린 커다란 방이었고 가운데 있는 긴 받침대위에 밥그릇과 물그릇이 30여개 줄줄이 놓여있다.
70마리 정도 될까? 밥 먹는 아이, 물 먹는 아이, 화장실간 아이, 노는 아이, 자는 아이, 등등, 고양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 오른쪽 편에 커다란 소파에도 고양이들이 15마리도 정도 모여 자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이라니! 드디어 고양이 섬 가고 싶던 소원을 풀은 건가? 별아!
세상에! 코숏(코리안 숏헤어: 일반 잡종 고양이)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숲, 샴, 터키쉬 앙고라, 랙돌, 러시안 블루, 브리티시 숏헤어, 페르시안 고양이 등 품종 냥들도 많았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 많은 품종 냥들은 다 누군가 버리고 간 고양이들이라는 사실, 대부분 코숏은 교통사고나 병으로 왔을 테고 품종 냥은 유기되어서 왔을 터였다. 이곳은 최전선이었다.
“예치야. 애고 이런.”
별이가 먼저 예치를 발견했다. 예치는 중앙에 있다. 하반신마비라서 움직이지 못하는 만큼 다른 아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선지 플라스틱 펜스를 쳐놓았다. 옅은 노란색 털, 그리고 하얀색 발과 입, 여전히 예치는 이름처럼 예뻤지만….
예치는 맑은 눈으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예치야. 예치는 공원에서처럼 머리를 들이밀지 않았다. 단지 눈을 깜빡일 뿐이다. 알아볼 리 없겠지. 벌써 3개월이 지났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힘들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그래도 상반신은 움직일 수 있어 앞다리로 끌어서 기어 다닐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예치도 다른 아이들처럼 발랄 발랄했었는데.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건가.
봉사자가 와서 배뇨를 해 주었다. 척추가 부러졌다는 것은 하체의 감각을 상체의 뇌로 전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라서 요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 이런 작업을 해주어야한다.
“이런 아이들이 이 센터에 3명 있어요.”
“이렇게 배변, 배뇨를 해주어야하는 아이들이요?”
“네. 예치하고 고동이하고 노라하고.”
예치는 입소한지 1개월 정도 되었고 고동이는 2년째, 러시안 블루인 노라는 1년쯤 된 것 같았다. 노라는 주인이 안락사 시킨다고 해서 데려왔다고.
“H님이 고동이 후원자시죠? 고동이 보여드릴게요. 따라오세요.”
1층의 왼쪽 끝에는 따로 분리된 구역이 있었다. 그곳은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문을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환자전용구역이다. 민감하고도 중증인 환자만 모아놓은 곳 같다. 들어가자 곳곳에서 으르렁 소리가 폭풍전야에 낮게 깔리는 바람소리처럼 들려왔다.
“여기 애들은 아프고 민감해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해요. 알았다. 빨리하고 나갈게.”
10평정도 되는 공간, 동물병원처럼 3층으로 쌓여진 철창 속에는 다양한 아픈 고양이들이 있다. 두 눈이 없는 고양이, 한눈만 없는 고양이, 팔 한쪽이 없는 고양이, 다리가 다 없는 고양이, 등등, 다들 무슨 사연일까.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그 많은 철창들 속에서 봉사자는 고등어 태비 ‘고동’이를 꺼냈다. H님은 2년 만에 보는 고동이가 반가워 연신 이름을 불러댔다.
“아! 고동아! 고동아!”
그러나 고동은 으르렁거리기만 했고 봉사자는 배뇨를 해주었다. 배뇨를 마친 고동이는 바로 옆의 철창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동안 고동이는 봉사자에게나 H님에게까지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너무 힘든 걸까? 자세히 보니 고동이는 앞다리만 두 개있고 뒷다리가 둘 다 없다. 2년 전 하반신마비로 입소했는데 이렇게 2년을 보내다보니 다리가 썩어 들어가서 얼마 전 절단했다고 한다. 그 비용도 상당해서 H님의 퇴직금 일부를 보냈다지?
“원래는 개냥이 였는데….”
H님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2층으로 가시죠. 2층엔 1층보다 덜 친화적인 애들이 있어요. 3층은 진짜 샤이한 애들이고.”
봉사자는 계단을 올라갔다. 우리도 따라갔다.
1층처럼 50평의 공간에 사방 벽을 따라 3층으로 철창이 쌓여있다. 철창 속에는 한 마리씩 고양이들이 모두 들어있다. 이 속에는 밥, 물, 화장실도 하나씩 있다.
“너무 공격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약해서 공격당하거나 하면 풀어놓을 수가 없어요. 싸우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너무 강하거나 너무 순한 아이들. 결국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적당히 사람들과도 친하고 고양이하고도 친한 아이들이었다. 어쩌면 2년 전 공원에서 우리 집에 온 루나도 여기라면 갇혔을까? 루나는 사람만 좋아하고 고양이에겐 너무 공격적이니까. 입양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합사가 안됐잖아.
“이제 3층이 마지막이에요. 여기 올라갈 때 진짜 조심해야 해요, 정말 샤이한 아이들이니까.”
별이와 나는 소리 나지 않게 걸었다. 3층은 옥탑 방 같았다. 지붕이 낮아 겨우 일어설 수 있다. 어두컴컴한 방에 40여 마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조심했지만 올라온 순간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동그란 머리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있다. 나와 별이는 소리도 못 내고 웃었다. 80여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놀란 모습이란!
“엄마. 그래도 여기 들어온 아이들은 로또 맞은 거야.”
별이의 말에 웃음 지으면서도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지. 그럼에도 150마리는 너무 많았다.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신경 쓸 수가 없을 터였다. 쉼터에서는 최선의 최선, 정말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거였지만….
나는 30여개의 고양이 화장실을 치웠다. 그사이 별이와 H님은 장난감으로 고양이들과 놀아주었다.
저렇게 좋아할 수가! 오랜만에 쉼터 고양이들이 강아지처럼 뛰고, 나비처럼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