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고양이들 40편 /예치 3-3
“민쌤. 공원에서 본 아이 같은데 다쳐서 어젯밤에 데려왔나 봐요. 당직실 앞에 있어요.”
“네? 제가 가볼게요.”
가슴이 철렁했다. 출근해서 5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아리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하다가 당직실 앞에 캐리어를 본 것 같았다. 거기에는 주로 전날 밤 숙직할 때 신고 되어 들어온 동물들이 들어있다. 유기된, 고양이와 강아지라면 동물보호센터, 다친 야생동물이라면 야생동물협회로 가게 된다. 강아지도 야생동물도 아닌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길고양이는 신고 받지 않지만 다쳐서 신고 됐다면 동물보호센터로 가게 되어있었다. 센터나 협회도 직원들이 출근해야 데리러 올 수 있으므로 밤에 들어온 동물들은 다음 날이 되어야 이송될 수 있다. 나는 평소 끝 쪽 현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중앙 쪽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리리, 예치에 이어. 또? 공원 고양이 중 누가 다친 걸까? 캐리어를 들여다보니 삼색이 고양이였다.
삼색이, 저 색깔은? 저 크기라면, 레나? 레나인가? 어쩌다가 사고를. 야옹 소리도 못 내고 사람들이 다가오자 일어나려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는 모습, 두 달 전에 공원으로 이사 온 레나다.
‘처음 보는 삼색이네? 예쁘게 생겼네!’
공원의 세 번째 급식 터, 여기는 레미와 수수가 사는 곳, 공원의 북쪽 초입이고 다세대와 맞닿아 있다.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난다면 이곳일 확률이 높다. 삼색이는 밥을 먹고 있다. 어려 보이지는 않았다. 7∼8개월 정도? 게다가 귀커팅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어디선가 밥을 먹던 아이다. 왜 이사 왔을까?
“어디서 온 거야? 귀연 고양이!”
삼색이가 돌아보았다. 피하는 기색 없이 빤히 쳐다본다. 간식을 주며 말을 걸었더니 양양하며 말한다. 제법 사람과 친한 고양이네?
나는 ‘레나’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레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볼 수 있었다. 밥을 먹다가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레나를 보면 자연스레 집에 있는 루나가 떠올랐다. 루나도 이렇게 귀커팅 된 채로 이사 왔었는데. 눈도 얼굴도 동글동글한 모습이 이토록 닮았을 수가! 삼색(하양, 검정, 갈색) 중, 갈색 무늬만 빼면 똑같겠는걸!
나는 한숨을 쉬며 회색 캐리어를 내려다보았다. 동물보호소로 가게 된다면 2주 동안 방치되어 죽던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안락사 될 것이다. 아 정말 어떡해야 하지? 같이 갔던 동아리 직원은 나를 바라본다. 모두 나만 바라보면 어쩌란 말인가. 재벌도 아닌데.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내 머릿속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불쑥 말이 나왔다.
“제가 맡겠습니다. 병원에 데려갈게요.”
동아리 직원의 얼굴에 희색이 돈다. 오기로 했던 동물보호센터에서도 흔쾌히 알았다고 한다. 나는 서둘러 휴가를 내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다리만 다쳤다면 살 수 있는데. 언니 집으로 입양돼서 ‘마루’가 된 ‘리리’처럼 말이다. 레나는 울지 않았다. 조용히 뒷좌석 캐리어 안에 누워있다. 곧 병원에 도착했다. 긴급 상황이었지만 의사가 아직 출근을 안 해서 레나는 또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엑스레이를 찍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수의사가 들어오라고 한다.
수의사는 엑스레이 도면을 보여주었다.
“척추가 다쳐서 걸을 수도 없고 하체의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소리를 내지 않아 많이 다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수의사는 수술할 수도 없다고 한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지만, 살아나더라도 이런 경우 하지마비가 된다고 했다. 이런, 예치랑 너무 똑같잖아. 만약 살더라도 예치처럼 평생 누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길고양이라고 했죠?”
“네. 어떡하죠.”
“길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겠지. 누군가 하루 종일 돌봐주고 배변, 배뇨도 해주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현실적으로 그런 생활이 가능한 곳은 없었다. **쉼터에서 예치를 받아준 것은 천행이었다. 예치는 거기서 살고 있었지만, 사실 그곳엔 너무 많은 환자 묘가 입소해 있었다. 부탁할 수도 없고, 부탁해서도 안 되겠지. 또다시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만약 내가 사고를 당해 하지마비 환자가 된다면 어떨까? 평생을 움직일 수 없고 배변, 배뇨도 느끼지 못해 누군가 도와주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세상일은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안락사할 수가 없다. 현실에는 고통이 너무 커서 죽고 싶지만,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통 속에 삶은 무엇일까?
“이런 경우, 안락사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수의사는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수의사님. 사실 저도 평생 누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레나에서 물어볼 수는 없지만 레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는 여건도 없긴 합니다.”
“그렇죠. 방법이 없습니다.”
수의사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 지구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길 위의 삶이 너무 힘들었지? 엄마도 없이 길에서 살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레나. 너무 미안해.
“레나. 고양이별로 잘 가. 고양이별에서 친구들과 잘 살아야 해.”
나는 작별 인사를 했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레나의 눈…. 수의사는 이미 마취된 레나에게 심장을 멈추는 주사를 천천히 주입했다.
“어? 너 누구야?”
다음날 점심시간, 급식 터에 삼색이가 밥을 먹고 있다. 검정, 하양, 갈색? 레나랑 똑같은 삼색이?
삼색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양양한다. 생김새는 같을 수 있어도 성격은 같을 수 없는데?
“오! 레나잖아! 그럼, 어제 그 앤 레나가 아니었네?”
척추가 부러져 당직실에 신고 되었던 아이는 우리 공원이 아닌 다른 데서 온 아이구나. 어디서 신고 된 건지 확인을 안 했다. 사실 레나는 발견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서 밸리나 카레처럼 오래 본 아이는 아니었지. 그날 출근하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누구인지 몰라도 그 애는 많은 고통 없이 고양이별로 갔으니까 괜찮아.’
나는 서둘러 레나에게 줄 간식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