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고양이들 42편 /여행고양이 루나/ 6-6
이토록 평화로운 오후가 몇 년 만이람! 따사로운 햇살에 고양이들이 거실에 다 나왔다. 오렌지색 태비 아리와 치즈 태비 다온이 캣타워에 나란히 앉아서 일광욕을 하고 있네? 베란다에 턱시도 루이는 창밖의 안양천을 바라보고, 그 옆 바구니에 달팽이모양으로 동글 말아져 자는 녀석은 삼색 새온이구나. 식빵모양으로 소파 위에 앉아있는 건 갈색태비 라온, 바로 옆에 뒷발을 한껏 치켜든 요가자세로 부지런히 그루밍하는 젖소 고양이 루나까지!
식탁에서 나는 루나와 별이와의 주말여행을 위해 에어비엔비 홈페이지를 탐색 중이다. 맞은편에서 별이는 숙련된 솜씨로 뜨게 가방을 만든다.
고양이들이 이렇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모습은 루나가 온 이후, 처음 있는 풍경이다. 2년 6개월 전 여섯 번째 고양이로 루나는 우리 집에 입양되었다. 그때부터 고양이들은 최근까지 자유로이 방을 이동할 수 없었다. 방 세 개에 모두 방묘 문(*고양이가 방을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틈새를 촘촘히 만든 철제 문, 점프를 잘하는 고양이들의 특성 때문에 높이 150-180미터정도로 설치함)을 설치했다. 처음 2주간의 격리와 합사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을 루나가 심하게 공격해서 5대1로 격리시킬 수밖에 없었으니까. 주로 루나가 거실에 있고 방에는 다섯 마리의 아이들이 분산 수용되었다.
방마다 고양이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가족들에게는 물론 고양이들에게 더욱 힘든 일이었다. 여섯 마리 중 세 마리 고양이는 10살이 넘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3살 정도로 상대적으로 어렸다. 특히 나이가 있는 어르신 고양이, 루이 라온 새온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태어나면서부터 10년이나 자유롭게 사람들의 ‘상전’으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굴러들어온 어린 녀석(루나) 때문에 갇히다니. 전엔 하지 않던 배뇨 스프레이(*영역표시나 자기과시를 위해 일부러 배뇨해서 냄새를 나게 하는 것으로 주로 수컷이 많이 함)를 많이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 이불이 매일 돌아갔고 곳곳에 강아지 배변 패드가 붙었다. 기존에 5마리의 고양이들도 모두 길에서 온 아이들이었지만 합사는 되었었는데….
하지만, 루나는 달랐다. 대장 냥이었던가?
이제 냉장고에는 언제나 ‘육묘(育猫) DAY’ 포스트잇이 붙었다. 날짜별로 가족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방에 갇힌 고양이들이 몇 시간에 한 번씩이라도, 교대로 루나를 피해 거실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루나를 방 하나에 가두면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자유로이 방2개와 거실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루에 세, 네 번씩 교대로 고양이들을 내보내주었다. 가족들은 보통 주말에 다음 주, 담당 육묘데이를 정했다. 모두들 서로 일정을 공유했다. 우리는 다음날 누가 육묘할 것인지 항상 확인했다.
다행히도 별이가 대부분의 육묘시간을 맡아주었다. 별이는 사서 준비를 위해 평생교육원에 다녔기 때문에 야간수업이어서 낮에는 거의 집에 있었다. 별이가 약속이 있거나 여행을 가면 나머지 가족들이 교대했다. 남편은 경찰, 나는 공무원, 슬이도 대학생이라 모두 바빴지만 그래도 별이까지 4명이라서 ‘육묘 교대 시스템’에 큰 무리는 없었다. 어차피 고양이들을 다이어트 시키기 위한 제한 급식 때문에 ‘육묘 교대 근무 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집을 오래 비울 수 없어 가족들 각자의 일정에 제한이 생겼지만, 다들 기꺼이 육묘시간에 동참했다.
이렇게 불편했어도, 루나는 최강 개냥이라서 단번에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게다가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고양이라 우리는 루나와 같이 매달 1박2일의 여행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불편하게 살아야할까? 도대체, 합사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
교대로 거실에 나온다 해도 하루에 몇 시간은 방에 갇혀야하는 시간이 계속 있었다.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별로 넓지도 않은 34평의 집을 다 쓰지도 못하고 많은 시간을 3-4평짜리 방에 갇혀있어야 한다니 심난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주 큰집으로 이사 가서 공간을 나누면 될까? 50평은 되어야 할 걸? 루나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힘이 빠져 싸울 수 없어진다면 가능할까? 10살은 넘어야할 텐데.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루나가 나이가 드는 것도 요원해보였다. 큰집은 비쌌고 루나는 이제 세살이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2년 만에 희망의 싹이 보였다. 상대적으로 어린 아리, 다온(루나와 비슷한 3살)이 먼저 합사가 되었다. 다온은 싸울 의지가 없어 루나가 패도 맞고만 있었고 아리는 너무도 재빨라서 루나가 패려고 눈치만 보여도 도망갔다. 오히려 아리가 잽싸게 때리고 도망가서 루나가 맞기도 했다. 싸움이 되지 않았다. 5대1, 루나와 다섯 마리에서 3대3 (루나, 아리, 다온 대 루이, 라온, 새온)합사였다.
다시 6개월이 지나면서 또다시 루나의 행동이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전에는 고양이들을 심하게 덮치고 공격했었는데, 이제는 싸워도 앞발을 들어서 때리는 정도였다. 이건 별로 세지 않아서 우리가 보기에는 장난치는 것 같았다. 루이, 라온, 새온도 예전처럼 루나를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세 마리의 어르신 고양이들이 루나와 싸우려는 의지가 보였다. 루나도 약간 무서운지 전처럼 달려들지 않고 관망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서 루나가 드디어 착해진 것일까? 어쩌면 집냥이가 되어가서 소심해진 걸까? 아니면 여행을 많이 다녀서 마음이 넓어졌나? 사실 서른 번도 넘게 여행을 갔잖아. 루나가 온 이후 한 달에 한 번, 거의 빼먹은 일이 없었지.
‘어쩌면 전부 합사가 가능하겠는 걸?’
재택근무(온라인 교육)하던 삼일동안 루나를 감시하면서 방묘 문을 다 열어놓았다. 루나는 다른 아이들이 방에서 못나오게 쫒긴 했지만 심하게 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 마리 어르신 고양이들의 합동 공격으로 루나가 혼비백산, 쫓긴 적도 있었다.
방묘 문을 열어놓는 시간을 늘려갔다. 낮에는 열어놓다가 밤에는 루나만 안방에 가두었다. 루나는 밤에도 계속 얌전했다. 내 옆에 누워 잠만 잤다. 낮에도 애들을 공격하는 사고도 안쳤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이제는 완전히 합사한 상태다.
다정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도 너무나 감사하지. 세월에 따라 점점 좋아질 테니까. 합사가 되다니! 이런 날이 오다니!
“여기로 여행가면 좋겠는 걸? 전망이 끝내준다. 별이야”
나는 별이에게 송도의 49층 오피스텔의 환상적인 뷰를 보여준다. 대화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루나가 천천히 다가온다. 자다가 일어났는데도, 캣워크, 패션모델 포스잖아.
“루나! 착하고 착한 우리 루나. 낭만 여행 고양이! 엄마랑 언니랑 또 여행갈까?”
“야!∼옹!”
루나가 앙칼지게 대답한다.
“밥이나 주래. 배고파 죽겠대.”
“별이, 고양이 말을 완전 알아듣네?”
별이가 웃으며 사료 통을 흔든다. 어느새 우리는 여섯 마리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