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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Dec 09. 2021

앵커와 꼰대 사이

박카스 한 병의 철학

 “세상에 나쁜 짓 하는 사람들 미쳐 날뛰는데, 저처럼 선하게 미치는 것은 괜찮지 않아요?”


 5천 원 남짓 요금의 거리를 급하게 잡아 탄 택시에서 초로의 기사님이 불쑥 내민 피로회복제의 명분이었다. 파란 딱지가 선명하게 붙은, 수십 년 마셔온 바로 그 박카스의 새로운 의미였다. 회사택시였다. 매달 사납금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 10시까지 영업제한이 있던 코로나 시국이었다. 그런데 기본요금 거리든 4명이 타든 상관없이 모든 승객에게 박카스를 한 병씩 주신다 했다.


 “모든 손님에게요? 그럼 한 달에 만만치 않은 돈인데요?”


 “많이 쓸 때는 30~40만 원 나가죠. 하하. 그런데 우리 회사 택시가 300대거든. 그중에 제가 상위권이에요.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건지, 베풀어서 돌아오는 건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래요. 하하…”


 박카스를 기쁘게 받아 마셨다고 다음에도 그 기사님의 택시를 골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밥집 사장님의 호의였다면 단골을 삼았을 텐데, 그렇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순수하게 자신의 이익 40만 원을 처음 만나는 손님들을 위해 매달 쓰시는 셈이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으신 걸까? 그런 생각으로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요즘은 세차보다 앞자리에 박카스를 박스로 챙기는 게 중요한 일과예요. 30년 회사 생활하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일상에 찌든 짜증 묻은 동료들의 얼굴을 매일 마주하는 거였거든. 왜 그때는 커피 한잔 먼저 건넬 생각을 못했을까? 하긴 나도 그냥 만사 힘들었으니 그랬겠지….”


 결국 나는 그냥 내릴 수 없어 만원 지폐 한 장을 드리고 거스르지 않았다. 한 병에 5천 원짜리 박카스를 손에 쥔 체 말이다.


 택시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향하며 박카스를 반쯤 비웠을 때, 또 한 명의 노인이 떠올랐다. 아버지다. 지하층 리모델링 공사를 한 달여 진행하며 아침마다 박카스를 손에 들고 나르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일하는 분들의 하루를 반기는 의식 같았다.


 “그렇게 매일 안 드려도 돼요. 알아서 물이든 커피든 사 드실 텐데. 하루 인건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그래도 그게 아냐. 아침에 시원하게 한 병 마시면 잠도 깨고 기분 좋게 시작할 거 아냐.”


 우리 집 공사니 잘 부탁한다는 완곡한 압박일 수 있고, 순수한 그들과의 소통일 수도 있으며, 여기 내 집이오 하는 귀여운 과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당신 역시 은퇴하기 이전까지 전국의 공사현장을 일터 삼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었을 것이다. 역지사지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나르던 박카스의 의미는….


 정치권에서는 4년에 한 번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인재 영입에 총력을 쏟는다. 어느 해인가 여당에서 영입 1호로 장애를 가진 한 대학교수를 선택했다. 그런데 당 대표가 인재 영입의 배경을 밝히는 과정에서 치명적 말실수를 하게 된다.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대요.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해당 교수는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데, 스스로 의지가 강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위한 스피치의 과정에서 선천적 장애인을 비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리 심리학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해도 여당 수장으로서 장애인 비하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수차례 사과해야 했다.


 몇 년 전 지상파의 한 아나운서는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자와 관련한 문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유식’에서 ‘유’의 한자를 묻는 질문에 오답을 골라 탈락했다. 선택 이유를 진행자가 묻자, 이유식이 아이들이 먹기에 부드러운 음식이란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부드러울 유(柔)를 선택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이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나온다.


 “역시 저는 한자 장애인이었어요.”


 장애인에 대한 발언은 신중해야 함에도 우리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별적 사고가 무심결에 말을 통해 튀어나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미지 장벽’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입장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서기보다는 그들의 장애 자체에 치우치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로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와 후직은 태평한 세상에서도 일을 하는 동안은 자신의 집 문 앞을 몇 번 지나더라도 결코 들어가 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공자의 제자 안회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다 한다. 이를 두고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다.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서로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의 시선이 국민을 바라본다며 그 일이 무엇이든 국민을 위하지 않을까. 장애를 가졌거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두지 않았더라도 장애에 대한 공감과 장애인에 대한 진지한 사색의 시간이 있었다면, 앞에 언급한 거대 정당의 대표나 전국에 방영되는 TV 아나운서의 말실수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향한 마음이 가장 절실한 때가 있다. 바로 연말연시다. 코로나로 얼어붙은 마음도 구세군 냄비의 자선 행렬과 기부로 따뜻해지는 사랑의 온도탑 온도를 낮출 순 없었다. 필자가 진행하는 ‘인사이드 스토리’에 연말특집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은 기부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팬들의 사랑으로 노래하고 공연을 하잖아요. 사업을 하고 빌딩을 세우는 다른 연예인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전 돈으로 행복할 수 없었어요. 쌓여 가는 잔고가 기쁨을 주지 못했죠. 그래서 비워내기로 했죠. 바꾸기로 했어요. 오래 팬들과 소통하며 노래하는 순간들과 돈을 말이죠. 그래서 멈출 수 없는지도 몰라요.”


 이탈리아어로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는 말 그대로 ‘미리 지불한 커피’다. 커피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은 자신의 커피를 사면서도 돈이 없어 한 잔의 커피가 그리울 이웃을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지 못한 하루의 시작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기에 형편이 어려워 커피를 거를 이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미리 돈을 내고 간다. 누군지 모를 그 손님을 위해서…. 의도는 없었으나 결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박카스 한 병을 5천 원 내고 마셨으니, 이후 한 박스가 또 다른 고객들의 피로를 달래줄 것이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몇만 원을 선뜻 지불한 승객도 분명 있으리라.


 박카스 한 병의 철학자는 지금도 서울 곳곳을 누비고 다니시겠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한 박스를 기부하고 또 다른 열 명의 피로를 씻어줄 테지. 그러다 보면 세상은 아주 조금 더 선해지지 않을까? 이 시각에도 어디에선가 승객에게 피로회복제를 선물할 초로(初老)의 택시 기사처럼 이렇게 말하는 철학자도 늘어날 테고….


 “선하게 미치는 것은 괜찮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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