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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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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14. 2021

이를 갈면서 준비했다.

결혼하는데 왜 나는 이를 가는가?

그 집 아들, 장손에게 시집가는 조건 중에 애기를 낳는 것은 필수. 그 아들의 엄마는 항상 그 말을 했다. 어서 낳자라고. 나는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했다. 결론이야 파혼이지만 결혼을 생각했던 건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래서 34년간 결혼 OK, 애기 NO!를 외쳤던 내가 애기도 낳아볼까하고 흔들리기도 했다.


결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어금니가 너무 아파서 치과에 갔다. 당연히 썩은 이겠지 했는데, 충치하나 없단다. 그러면서 의사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이갈아요?**


대학생 시절 극강 알바와 학교 스케줄로 코피가 터지면서 살이 쫙쫙 빠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턱이 고장났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를 앙 다물면서 감정을 참거나 밤에 이를 갈면서 자서 턱이 망가졌었다. 그래서 이갈이 방지 마우스피스를 끼면서 지냈다.  


그런데 십 수년이 지나서 그 버릇이 나왔다. 의사는 내가 잘 때 이를 심하게 가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이빨 표면이 마모가 좀 됐고 이를 너무 세게 갈아서 잇몸에 무리가 가서 아픈거라고 했다. 의사는 나에게 잇못염증약과 진통제를 처방해줬다.

**나는 결혼을 이를 갈면서 준비했나보다.**


그날 치과에 같이 와준 남자친구와 약을 타러 가는 길에 그의 엄마가 전화를 했다. 대뜸 나를 바꾸라고 하더니 치과 왜갔니?라고 묻는다. 나는 이를 갈아서 잇몸이 좀 상했대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엄마는 약먹으래?라고 물었고 나는 네 약을 먹어야 한대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말한다.

**치과 약 애기한테 안좋은데.**


맥락이란 게 이렇게도 부서지는구나 싶다. 그의 엄마는 치과 약을 먹고 자신이 유산을 했었다는 말과 함께 약의 부작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결혼도 하기 전 낳을지 말지 결정도 하지 않은 내 상상 속의 애기한테 혹여나 해가 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걱정의 대상에는 나는 없었다.

아마도 내가 이를 갈았던 이유가 이런 거겠지.**


방향이 틀어진, 어쩐지 위로라고는 눈꼽만큼 되지 않는 걱정에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장녀라 아프다는 말 평소에 하지도 않지만 그날 따라 엄마에게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또 이간대. 아파서 약타러 가라고 미주알 고주알 얘기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우리 딸 이 아프면 신경 많이 쓰일텐데, 치통이 제일 짜증나잖아.

약 먹고 아프면 바로 또 병원가. 병원가는 데 돈아끼지 말고, 병원 자주자주 가고~**


나에 대한 걱정은 없고, 생기지도 않은 애기에 대한 걱정만 하는 집에 시집갈 순 없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가족이라고 외치는 그녀가 나는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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