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로 대상을 받고, 2022년 7월 16일부터 8월 19일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 '품격'에서 책을 전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생활 반경에 있어 이미 여러 번 방문했다. 지인들과 간 적도, 함께 수상을 한 작가님들과 간 적도 있다. 갈 때마다 혹 지인 아닌 독자님께서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를 구매해주시진 않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갔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전시 월 앞쪽은 다른 구역에 비해 꽤 한산하기까지 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보문고에 들러보는 것도, 지인들과 함께 전시 월을 보러 가는 것도 모두 기쁘고 신나기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창수와 친구들의 경우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 친구들은 발달장애인이다. 내 책을 읽어도 이해를 하기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발달장애인의 독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쓰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글을 쓰며 살겠다는 사람인데도 이렇다. 창수와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이 넘어도 이모양이다.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발달장애인들도 발달장애가 없는 사람들처럼 독서를 하고 있을까. 독서에 대한 욕구는 있을까. 아니면 영상매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은 승가원에 거주하는 (혹은 거주했던) 친구들뿐이다. 그중에서도 학습능력과 취미 등을 알고 있는 건 창수와 그룹홈 친구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친구들에 한정된 이야기임을 미리 밝힌다. 고작 몇몇의 사례로 모두를 판단할 수는 없다.
창수와 친구들은 서울명수학교(서울다원학교)와 서울정인학교 출신이다. 초등학교는 일반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들도 몇 있다. 이 친구들의 읽고 쓰는 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더 뛰어났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방과 후 학습지 공부도 하니 퇴행이 올 시간이 없었다. 저녁에 뭐 먹을지를 정할 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김치찌개나 피자를 혼자 종이에 쓸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버스 환승도, 분리수거도 타인의 도움 없이 척척 해냈다. 선생님들의 표현을 빌리면, 승가원의 에이스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머릿속에 생각하는 내용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없는 친구가 있다. 아직 20대인데 벌써 퇴행한다. 꾸준한 학습시간이 사라져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창수는 '공부'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열아홉엔 싫어했어도 스물아홉엔 간절한 사람이 많은데, 우리 창수는 아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서점에 데려가 원하는 책을 골라보라고 하면 5세용 7세용 한글 공부, 숫자 공부 책을 집어 든다. 언니처럼 읽는 책을 골라보라고 하면 싫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정말 싫어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토요일 나들이를 위해 #발달장애인 #독서 #쉬운책 등을 검색하다 보니 싫어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가를 위한 독서를 접해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책을 읽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쉬운 책'의 종류도 아쉬웠다. 예전만 해도 발달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어린이용 동화책이나 그림책이 전부였지만, 몇 해 전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책'들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 쾌거이다. 그런데 아직은 그 수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돈이 되지 않아서 그러겠지만, 돈이 되지 않아도 필요한 사업이다. 계획적인 세금 투입이 절실하다.
위의 책들은 모두 느린학습자를 위한 책을 펴내는 피치마켓에서 발행된 책들이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이 여전히 어린이용 동화책만 읽어야 하는 현실을 타개해보기 위해 발간되었다. 위 책들을 살펴보며 나도 힘을 보탤 수 있는 분야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도 구로, 시흥 등에 개관되었다. 서초구에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있긴 있으나 창수가 사는 성북구에서 멀기도 멀뿐더러 각 장애별로 필요한 지원이 다른데 모든 장애를 하나로 퉁 쳐놓아 굳이 찾아가기가 애매하다. 단적으로 이 친구들에겐 점자도서가 필요하지 않다. 듣는 책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차라리 그림책이 더 직관적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창수에게 책을 왜 안 읽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모순이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창수가 이해할 수 있는 책도,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장소도 모두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족하다.
이번주 토요일 오전 11시, 창수와 친구들과 또 선생님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시 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어떤 내용의 책인지 설명해줄 예정이다.
창수가 언니 책을 사고 싶다고 조르기에 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꼭 산다고 고집을 부린다. 막을 수가 없다. 창수는 내일모레,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살 예정이다. 무얼 더 해야 창수를 더 보람차고 뿌듯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발달장애인들은 주말 독서를 위해 어떤 책을 고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