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처음 알게 된 건 2021년 9월 중순이었습니다. 친구가 보내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링크를 열어본 게 가입의 서막이었어요. 가입과 동시에 작가 신청을 했고, 다음 날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활동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존에 책을 냈던 경험이 이른 작가 선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반려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신나고 신기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11월에 첫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그건 다름 아닌, 무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대상 제안이었습니다. 제 글을 선택해 주신 건 한 명의 독자로서 참 애끼고 애정해 마지않는 문학동네였고요. 12월에 수상이 발표 나고, 다음 해 여름에 책을 내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 전시가 되고, 출판사에서 준비해 주신 몇몇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렇게 행복한 2022년이 지나 벌써 2023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기억과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아 살고자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시간은 참 빨리 흐르네요. 신긔방긔!
작년 12월엔 아빠의 명의로 광양에 아파트를 매수하는 상당히 진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생전 처음 가 보는 지역을 조사하고, 직접 발품을 팔고, 매수를 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을 브런치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싶었는데요. 그런데 아.. 게으름병이 또 그만..ㅋㅋㅋㅋ
그럼에도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제 상황을 항변해 보자면, 우선 작년 11월 중순에 직장을 옮겼습니다. 느낌상 개인시간이 기존의 20% 이하로 줄어든 것 같아요.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항상 글쓰기를 우선순위로 돈 버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건 적당한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 짬밥(!)이면 그 정도는 버텨내야죠.
아마도 더 정확한 이유는 다른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작년 12월, 넥서스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습니다. 창수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어요. 쓰는 이는 한 발짝 떨어져서 글을 써야 하는데 한 문장, 한 문단이 진행될수록 가슴이 아릿해서 큰일입니다. (그래도 꼭 잘 쓸게요, 팀장님. 보고 계신가요!! ㅋㅋㅋ) 소위 사회적 약자라 일컬어지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출판까지 할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여요.
그럼에도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써보자고 했던 결심이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고, 결국 한 달이 넘어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걸과적으로 쓰게 된 건 이렇게 주절주절 변명만 한가득인 일기일지 반성문인지 공지일지 에세이인지 모를 글 한 편 뿐이네요. 하아.
브런치는 혼자 쓰는 플랫폼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 이게 돈이 되기를 하나 누가 기다리기를 했냐! 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실 걸 알아요. 그리고 사실 이 글은 위와 같이 말씀하시는 분들께, 또 제 글을 찾아주시는 독자분들께 내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야 (응?) 본격적인 고민을 털어놓아봅니다.
저는 요즘 브런치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들께요. 직장을 옮기고 출퇴근 거리가 늘어난 이후 브런치에 접속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서있거나 차량 내부가 붐빌 때면 종이책보다는 브런치를 찾아듭니다. 보통은 제가 구독하는 작가님들께서 올려주신 글들을 먼저 읽고, 그다음엔 발견 탭으로 넘어가 글들을 탐색합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글들도 찾아 읽고요. (이 작품들은 따로 찾아 읽을 수 있게 탭 만들어주시면 안 되나요!!! 브런치 글감 검색에 문학 파트 만들어주시면 더 감사드리겠습니다.ㅠㅠ)
그런데 이렇게 읽기만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부채의식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글 한 편을 작성하는데 쏟는 마음과 시간, 정성을 알기 때문이겠죠. 예전에 브런치의 유료화(!) 논제가 나왔을 때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매일 읽기만 하다 보니 독자가 자율적으로 결제를 할 수 있는 결제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싸이월드 도토리처럼 충전해 놓고 (우리 다 공감하잖아요..?) 100원 단위, 아니면 10원 단위로라도 스스로 원하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요. 참고로 무료 사진 다운로드 사이트 픽사베이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이미 적용되고 있습니다. 자율 기부금 형식으로 운영되어요.
귀한 글들을 읽기만 하고 저는 아무것도 제공해드리지 못해서 쌓이는 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까요. 조금 더 바지런해져서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올리고 싶은데, 그조차 밀리다니요. 스스로에게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브런치는 제게 쓰는 공간에서 읽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여전히 쓰는 공간이기도 해야 할 텐데요. 작가님들의 소중한 글을 읽고 드릴 수 있는 게 라이크뿐이라 오늘도 송구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염치없지만) 올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건강과 행복, 돈까지 가득한 한 해 보내셔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