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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Jan 06. 2022

내 말은 말이야

문자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무뚝뚝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문자를 할 때 보통 "ㅋㅋㅋ"나 "ㅎㅎㅎ"를 쓰지 않고 마침표를 찍어 보내는데, 이런 답장은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몇 번 써보가도, 어색해서 금방 그만두고는 한다. 괜히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희석하거나 가볍게 만들까 봐 노파심에 그런 것도 있다.  알고 지낸 사람들은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 이해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한 번은 어색한 문장을 꾸며보려 소심하게 "ㅋ" 하나를 끝에 넣은 적이 있는데, 하나만 쓰면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웃긴 농담을 읽고 한참 소리 내서 웃은 후에 "ㅎㅎ"를 보냈다가, 친구가 재미없었던 줄 알고 민망했다고 하니 참 알쏭달쏭하다. 전화로 했다면 목소리의 높낮이와 떨림으로 그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전달하기도 쉬웠을 텐데,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문자보다는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대화는 가능하다. 소통방식이 다를 뿐이다. 출처: New Yorker

더 짧은 글에 담길수록 해석의 여지는 많아진다. 이런 면에서는 소설보다는 단편이, 단편보다는 시가 더 무궁무진하다. 이는 함축된 의미가 많 때문이다. "님의 침묵"을 읽고, 조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오발탄" 속의 주인공이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지고 방향을 상실한 총알로 빗대어진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넘겨준 수수께끼들은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문자와 같은 소통 과정에서는 비유보다는 간결하고 깔끔한 전달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상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높은 직책일수록 검토할 사안은 많아지고, 시간은 촉박하다. 몇 번이고 같은 책과 보고서를 읽고 이해하는 시간과는 별도로, 몇백 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건네주고 브리핑할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간추리고 또 간추려서 필요한 내용만을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없는 내용을 늘리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중요한 사안을 빠뜨릴까 봐 다시 더하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고, 쳐내다 보면 원래 내용을 벗어난다.

다양한 이모티콘들이 있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출처: Pixabay

문자는 대화 같이 가볍게 주고받지만, 동시에 말처럼 뱉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지처럼 기록에 남지만, 그만큼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다. 그래서 애늙은이인 나에게는 더더욱이 독특한 매개. 정과 어조로 전달하고 상대의 얼굴을 읽으며 대화하는 일이 익숙한데, 이모티콘으로 대체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굳은 얼굴로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휴대폰의 대화창도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고 사회의 가면을 쓰고 만나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지금은 더 그렇다. 상사들에게 "Thank you" 혹은 "고마워요" 대신 "Thx"나 "ㄱㅅ"를 받으면 내가 일을 잘못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나고 보면 일이 너무 바빠 제대로 답장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데, 문자로 받을 때는 그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고객사를 대할 때도 직접 만나 분위기와 온도를 재며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영상통화와 이메일만으로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대면으로 소통할 때에는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이에 맞는 방식으로 적응해나가야 한다.

이제 대화는 글과 말을 넘어 이모티콘, 사진, 동영상 모두를 포함한다. 출처: Pixabay

하늘을 수놓은 많은 별들 중 몇 개를 이어 만든 이야기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밤하늘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느 곳을 가리켜야 할지 모른다. 보는 위치와 계절에 따라 바뀌는 모습은 더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북극성 같은 나침반이 있어야 그 별자리들을 볼 수 있다. 문자도 마찬가지다. 구어체와 문어체가 뒤섞여 짧게 오가는 단어 몇 개에 의미를 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말은 말대로, 문자는 문자대로 쓰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진화해가는 소통방식 앞에서 고집부리지 않, 서툴지만 맞추어나가려고 노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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