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든가 말든가 (2024.08.31.토) *
- 그러든가 말든가.
매해 여름방학 전후로 전출생과 전입생이 있는데, 보통 전출생으로 인해 약간 어수선하던 학급이 전입생으로 인해 분위기가 전환되고 들뜬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친구가 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에 긴장이 되면서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업하던 A 학급 아이들이 나에게 질문했다.
- 선생님! 저희는 왜 전입생이 없어요?
- 옆에 있는 친구가 아직 전학 가지 않아서요.
- 아??
-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세요. ‘왜 아직도 안 갔어? 새로운 친구가 올 수도 있었는데!’
- (모두) 하하하!
전입생을 어느 학급에 배정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학급 인원수다. 전출생으로 인해 인원이 적어진 학급에 전입생을 배정해서 평균 학급 인원수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제2외국어, 동명이인 등 기타 고려 사항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첫 번째 우선순위는 전체 학급 인원수다. 그러다 보니 전입생을 맞는 학급에는 무언가 새로운 기운을 선사하게 되지만, 학급의 특성이나 전입생의 특징을 고려하지 못하고 전입생을 배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전입생이 있는 B 학급을 수업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 C(전입생), 잠깐 귀 좀 막아보세요. 앞담화 좀 하게요.
- (모두) 하하하!
C가 귀를 막는 시늉을 하고 아이들은 즐거운 얼굴이다.
- C가 들어오니까 어때요?
- 좋아요! / 착해요! / 기대돼요!
- 새로운 친구가 오니까 좋죠?
- 네!!!
대상을 바꾸어 다시 질문했다.
- 그럼, 이제는 C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 귀를 막아봐요. 역시 앞담화 좀 하게요.
- (모두) 하하하!
아이들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한다.
- C, B 학급 아이들 어때요?
- 아이들이 착한 것 같아요.
- (놀라며) 착하다고요?
- (모두) 하하하!
-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아직 처음이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 있어요.
- (모두) 하하하!
방학 동안 읽은 책 중에 <침묵을 배우는 시간 - 코르넬리아 토프 저>이라는 책이 있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말을 멈추고 침묵하라는 것이 주제다. 말 비우기 연습,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관종이다, 비울수록 커지는 말의 무게, ‘말을 해야 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대화를 유리하게 이끄는 법,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말이 넘쳐나는 세상 속 침묵할 권리 그리고 고요한 관조의 힘이라는 타이틀로, 하고 싶은 말, 불필요한 말, 하나 마나 한 말, 화가 나는 말, 앞에서 또는 뒤에서 하는 말 등, 제발 불필요한 말을 멈추고 침묵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 앞담화 :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헐뜯는 행위
- 뒷담화 :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헐뜯는 행위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돌려서 말 못 해’, ‘나는 직설법을 써’ 또는 ‘나는 말하고는 잊어버리는 쿨한 사람이야’ 등의 말로 사정없이 앞담화도 해 보았고, 나와 너의 이야기가 아닌 제3의 인물에 대하여 수도 없이 뒷담화했던 사람으로서 한해 한해 세월이 갈수록 ‘말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며 특히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쓸데없고 불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D가 E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공감을 원했다.
- E가 이렇지 않아요?
- 음….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공감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간 사실이 얼마나 기뻤는지! 또 언젠가 F에게 말했었다.
-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는 하지 않겠어요. 각자의 교육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잘하고 있으니까요. 열심히 한다고 열매를 맺는 것도, 대강 한다고 잘 못 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 같아요.
능력이 많다면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겠지만, 전심전력하는데도 한참이나 부족한 나로서는 최근 몇 년 동안은 오직 내 앞에 있는 일을 해내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다를 떨거나 한담을 나누는 것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고, 다행스럽게도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힘든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거나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했더라도 굳이 (교무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 보았자 결국은 내 문제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늘, 언제나 경험했기에 그냥,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속으로 참고 잊으려 한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알게 하고 싶지도 않다. 며칠 전 G가 물었다.
- 선생님,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면 속이 좀 풀리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 아뇨, 선생님. 저는 다른 사람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어요. 물론 생각과 다르게 다른 사람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래요.
입을 다물고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기로 한 나이지만, 언젠가 잠깐 시간을 내어 H와 이야기하던 중 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던 경험을 또 한 번 한 뒤로는, 가능하면 침묵하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내 입을 통해서 한번 나간 말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세상에 다 퍼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다짐하고 결심하고 절제한다고 해도 침묵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할 것도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더욱더 줄이고 필요한 말만 딱! 하면서 조용히 침묵하며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입을 닫으니, 눈은 크게 떠지고 귀는 열리며 생각은 더 깊어지고 머리는 돌아가는 경험도 하고 있다. 또 침묵하기로 하니, 화를 내야 하거나 날카롭게 대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리거나 꾹 참아버리면서 불편한 감정을 싹둑 잘라내 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나쁜 생각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튕겨내는 것도 된다. 신기하다. 이렇게 나에게 말한다.
- 그러든가 말든가. 네가 어떻게 말하건, 어떻게 반응하건 나에게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입을 닫고 별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 이야기도 특히 내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더라도, 묵직하게 침묵하더라도 이해해 주기를. 또 그새 못 참고 온갖 말을 다 쏟아내더라도 이해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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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작은별 2023>과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3>이 출간되었던 6월 말과 7월 말, 이 소식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난감했다. 2022년에 처음 책 <2021버전>이 나왔을 때는 멋도 모르고 전체 교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서 알렸고, 내가 알고 있는 단체와 사람들에게 SNS를 보냈다. 문제는 두 번째 책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이 일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되었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모양새였지만, 다른 사람 누가 그걸 알려줄 것인가.
작년에는 교지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해서 들어갔지만, 올해에 또다시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 책이 나온 것을 내가 말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알겠어.
어쩔 수 없이 아주 짧은 메시지를 전체에게 보냈는데, J가 말했다.
- 다음에는 내가 알려줄 테니 나에게 말해요.
- 그래도, 제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요.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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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멈추고 기도를 시작합니다’라는 가사에 말을, 생각을 멈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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