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말이 필요한가?? (2024.10.19.(토)) *
- 과연, 말이 필요한가??
주된 대사가 한국어인 나이지리아 하이틴 영화 A에 대한 뉴스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장학금을 받게 된 가난한 집안의 여학생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이지리아 명문고에 진학하여 펼쳐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일명 K-드라마의 전형을 따라서 만들어진 재미있는 영화라고 한다. 긴 대사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앗싸’ ‘어떡해’ ‘빨리’ ‘대박’ ‘내 말이~’ ‘진짜 싫어’ 등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를 나이지리아 배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 홍보 영상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중에 어떤 남자 배우 B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모습이 무척 현실감 있었다.
- 집. 중. 해!
K-음악이나 K-드라마에 빠져서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나라 국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아예 본국에서의 삶의 터전을 모두 내려놓고 우리나라에 유학을 와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게 되었다.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판소리’ ‘창’, 일명 ‘소리’를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전공까지 하는 아프리카계 프랑스인 C와 캄보디아인 D의 ‘소리’를 듣고서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놀랐다.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은 너무도 흔하게 많지만, 전문가를 넘어서는 뛰어난 정통 국악 발성으로 판소리와 민요를 부르는 외국인은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 우리나라 말이 쉬운 걸까? 잘하는 외국인이 이렇게 많다니!
-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은 걸까?
- 외국어 배우기는 너무 어려운데?
프랑스어 1, 2와 스페인어도 배웠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그때는 열심히 했었고 재미있었으며 성적도 잘 나왔었는데, 지금은 1도 기억나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하하. 물론 영어는 더 어린 시절부터 더 오래오래 늘 해왔지만, 역시나 나의 언어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시나 저 멀리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언어라는 것을 매번 확인할 뿐이다.
한때 독일어와 프랑스어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로 옮겨간 제2외국어 흐름이 베트남어와 아랍어와 스페인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흘러가고 있지만, 뚜렷한 것은 시간을 들여 외국어를 익히려는 노력이 예전만은 못하게 보인다. 내가 직접 알지 않더라도 도움을 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있어서 일 듯하다. 지난겨울 일본에 갔을 때도 E라는 앱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까. 앞으로는 더 유용하고 간단한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F 작가가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발표가 났을 때, G가 말했다.
- 작가는 번역가를 잘 만나야 해.
F 작가의 작품은 이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번역이 되어 세계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번역이란 새로운 창작이 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말의 그 미묘함을 외국어로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외국어를 우리나라 말로 옮기기도 심히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번역가는 어떻게 선정하는 걸까. 한국인과 외국인의 공동 번역이 가능한 사람, 한국인과 외국인 가운데 한쪽이 주번역을 하고 다른 한쪽이 보조 번역이 가능한 사람 또는 외국인과 공동 번역으로 한국 문학 작품의 번역을 완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정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언어로서의 실력을 기본으로 하여 문학적인 소양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번역가를 만난다면, 작품은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 있을 듯.
- Korean Language is One of the Best in the World.
우리나라 언어가 세계 최고라는 (낯간지러운) 대사를 버젓이 쓴 나이지리아 영화 A에서 한국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쓰여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문학과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K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 요즘, 이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왔으면, 또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역사에 뚜렷하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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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소망 없는 불행>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1966년에 쓴 첫 작품 <관객모독>을 연극공연으로 보았다. 대학생 때부터 제목만 알고 있던 작품을 이제야 직접 감상하게 된 것.
공연 중에 물을 뿌리거나 관객에게 욕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서일까. 앞자리와 통로 첫 번째 줄 좌석들은 비어있었는데, 우리는 용감하게 그 자리들을 예매했고, 물벼락과 욕벼락을 모두 맞았다.
4명의 배우가 대사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맛깔스럽게 대사를 던지고 받고 비틀기를 한다. 또 띄어 읽기를 하여 전혀 다른 단어로 만들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 한다든가, 의성어만 사용하여 대화한다든가, 각자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으로 대사를 한다든가 하는 등 정신없이 역동적으로 연극이 진행되었지만, 배우가 말하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연극을 이해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떠드는 배우들을 보며, 대사가 소음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서로에게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과연, 말이 필요한가??
- 지금 표현하는 그 단어, 그 언어의 뜻을 모르더라도 네가 어떤 심정인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 번역도 필요하지 않아.
- 우리에게 과연, 말이 필요한가??
좋은 작품이란, 새로운 시도를 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신선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연극 <관객모독>이 유명한 이유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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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관객모독> (2024.10.08.(화)) 커튼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