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FAMILY (2024.11.02.(토)) *
- 아, 우리 가족, SNU FAMILY 인데요.
아주아주 오래전,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날이었다.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방석과 꽤 굽이 높은 슬리퍼를 정리해 놓고 교무실을 나왔는데, 개학을 한 뒤 보니 방석과 슬리퍼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 공사를 한다고 해서 교무실이 오픈되어 있었지만, ‘설마?’라는 마음으로 그냥 놓고 갔었는데, 없어진 것이다. 특히 슬리퍼는 내가 좋아하던 것이어서 온 학교를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던 것 같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방석과 슬리퍼가 생생한 것은 좋아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전혀 가져가고 싶지 않은, 저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진 것’이 없어지다니! 명품도 아닌데!
명품을 살만한 돈도 없지만, 명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니 가지고 있는 명품도 없고 남들이 가지고 있더라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나도 알고 있는 명품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 좀더 구색을 갖춰줘야 할 텐데! (왠지 부족해 보이는데….)
진짜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품 말고 최고의 부자만 알 수 있는 티 나지 않는 명품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건 좋다고 생각한다! 이왕 명품을 가지려면, 알려진 것 말고, 아는 사람만 아는 희소성 높은 명품을 가지고 있기를 추천한다. 너나 저나 다 가지고 싶어 하고 다 알려진 제품은 희소성이 없으니까. 또 가능하면 로고가 없이 제품 자체로 명품 태가 나면 좋을 텐데, 왜 상품 로고가 진하게 박혀있는 걸까. 물론 그 로고 때문에 그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무언가 티가 나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왕이면 A 커피전문점 로고가 찍힌 텀블러가 있었으면 좋겠고, B 로고가 있는 가방이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고, C 로고가 살짝 보이는 시계도 있으면 좋겠고 등등…. 하하.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고작 A사 로고가 박힌 텀블러 정도가 전부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 그곳 대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그 학교 로고가 있는 기념품을 구매해서 소장했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볼펜, 노트, 컵과 스티커가 단골 소재였다. 잠깐 방문한 외국 대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그 물건은 마치 내가 그 학교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해 주었고, 마치 내가 그 학교 학생이 된 듯한, 아니면 앞으로 그 학교 학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간직하게 해 주었다. 2024년 겨울 일본 여행에서 D 학교 기념품을 찾았으나, 그 흔한 기념품은 없고, D 학교 상표가 붙여진 ‘카레’가 있어서 구매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이, 유명 대학교 기념품이다.
외국 대학교는 약간 ‘허상’에 불과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S대라고 하면 ‘잘 하면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그걸 알고 있는 나는 담임을 할 때 아이들의 생일 선물로 S대 기념품을 선물했었다. 처음에는 ‘먹는 게 남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맛있는 간식류를 주다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S대 굿즈를 선물했었다. S대 기념품은 학교 학생회관이나 생활협동조합에서 팔기도 하고 인터넷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샤프나 볼펜, 그리고 초콜릿도 주었었는데, 모두 다 S대 로고가 새겨있었다. 아이들은 샤프, 볼펜 또는 초콜릿 자체보다도, S대 로고에 환호했다. 학교 스티커도 나눠주었는데 아이들은 노트, 교과서, 책상 위나 사물함 뚜껑에 S대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우리 반 아이들 생일 선물로 주는 S대 기념품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SKY를 가기 위한 입시전략을 상담해 주고 SKY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면서, 정작 S대 기념품은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싫어했을까??
몇 달 전 ‘SNU Family 스티커’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S대 로고와 함께 <I'M MOM> <I'M DAD> <PROUD FAMILY> 등의 문구가 있는 차량 스티커를 학부모가 신청해서 받을 수 있었는데, 학벌주의를 조장한다고 시민모임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한다.
S대 로고가 있는 차량 스티커는 나도 붙였던 적이 있다. 생애 첫차를 샀던 아주아주 옛날, 후배들을 만나러 학교에 갔다가 차량 스티커를 구매해서 차마 밖에서 보이게 붙이지는 못하고 차 안쪽에 붙였었는데, 이런 스티커가 있는 게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크리스천인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차량 스티커가 많이 있지만, 차마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운전하지 못하면 분명히 좋지 못한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S대 로고 차량 스티커는 왜 주저함 없이 붙였을까? 욕을 먹는 것보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었을까??
S대 Family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영화 대사처럼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 ‘내 친구 중에 의사가~ ’, ‘내 동생은 강남에~’, ‘우리 아이가 S대를~’처럼, 제 3자의 명성을 빌어서 자기도 같이 띄우고 싶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늘 경험한다. 이사를 하려고 집을 보러 다니던 친구 E에게 중개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이 집 아들이 S대를 갔어요! 제가 이 집을 이 가족에게 소개했죠! 이 집에 오면 S대를 갈 수 있어요!
함께 있었던 E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아, 우리 가족, SNU FAMILY 인데요.
원하는 명문대학교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지는 시대에, 이제는 의대에 밀려서 S대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은 S대를 들어갔다고 하면 누구나 놀라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무슨 과에 갔는지가 더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사실 중 하나는,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S대를 들어가기가 힘들어졌다는 것. 학교, 학원 또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경제적인 도움이 있다면 S대로의 진학이 좀 더 수월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그 어려운 S대를 갔다면 당연히 자랑하고 싶고 동네방네 말하고 싶고 누군가가 나 대신 말해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있을 수 있다. 우리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 학교 로고가 있는 차량 스티커가 있으면, 또는 가족인 것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있으면, 자랑스러워하며 붙이고 다닐까?? 아마 S대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개 작은 고등학교니까 쪼금 용서가 되고 받아줄 만 하지 않을까?? 아니, 부끄러워할까??
명품을 가진다는 것은, 명품 자체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명품을 살만한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명품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을 뭐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명품 없이도 그가 자신감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력과는 조금 다른, 명예에 관계된 자랑, S대생이거나 S대생 가족이거나, 전문직을 가졌거나 또는 가족 중에 그런 직업이 있거나, 그 무엇이든 자기나 가족의 어떠함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하여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에 S대생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거나, 내가 S대생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또는 우리 가족은 모두 S대 출신이라고, 현관문 밖에 크게 써놓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S대의 후광이 없어도, 그 한때 반짝이는 그 명예가 없이도 우리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감과 자긍심과 자존감을 갖고 살아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엄청나게 어렵지만 말이다.
S대가 분명 파워 있는 단어이기는 하다. 삶 가운데에 S대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고 축복된 일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모든 것은 한때라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반짝이는 것일수록 의미 없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 모두가 쫓아가는 유명하고 높은 것들은 허울뿐인 허상이라는 것….
S대 로고가 새겨져 있던, 엄청 맛없었던 초콜릿의 맛이 기억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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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기 1차 지필고사 감독으로 들어갔던 3학년 교실.
수능 원서 접수를 한 뒤에 붙여 놓은 걸까.
SNU FAMILY를 꿈꾸는 걸까.
허울뿐인 허상이지만,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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