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서글픈 세상이네요. (2024.11.09.(토)) *
- 참 서글픈 세상이네요.
아침 방송에서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 제 딸이 승마하다가 떨어졌습니다. 오늘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죠?
진행자가 몇 분 뒤에 또 다른 청취자의 메시지라며 소개한다.
- 끼니 때문에 새벽부터 일하는 저 같은 사람과 승마하는 사람이 같이 듣는 방송이라니, 참 서글픈 세상이네요.
이 메시지를 읽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약간 당황한 듯했고, 이 말을 들은 나도 무척 놀랐다. 이렇게 외마디 말을 내뱉었으니까.
- 아! 속상하다!
물론 저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씁쓸하게 나를 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언젠가 이런 내용도 있었다.
- 1년 동안 프랑스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크리스마스쯤에 돌아가야 하는데 1년을 더 있을까 해요.
이런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을 부러워했을까? 아님, 자기의 형편을 보고 속상해했을까? 무엇이었든 간에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을 내용이 또 어떤 이에게는 비참한 내용이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A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에서 음악을 듣는다던가 언젠가 여행을 갔었던 외국에서의 추억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늘은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
- 저는 오늘 골프 여제 박세리와 함께 라운딩합니다. 꿈만 같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양한 말씀을 하신다.
- 승마 이야기를 했던 진행자가 끼니 때문에 새벽에 일하시는 분 내용을 소개했어요? 와우!
- 나도 끼니 때문에 새벽에 나오는 사람인데!
- (모두) 하하하!
- 외국에서 1년을 보내다니! 부럽네!
- 평일에 골프라니!
- 언제나 있었던 일이죠.
- 세상은 불공평하니까요.
박빙의 승부라며 떠들썩하던 2024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선호하는 일반적인 리더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캐릭터인 트럼프의 완승이었다. 온통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내 귀에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J.D. 밴스의 이야기가 들어왔다.
미국의 역대 부통령 중 세 번째로 젊은 밴스는 태생부터 금수저인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른 일명 흙수저 출신이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 그리고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극도로 불우했지만, 외조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공을 향한 목표 의식을 갖게 된다. 고교를 중퇴할 뻔했던 그는 고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하여 이라크전 파병으로 번 돈으로 오하이오주립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다녔고, 로스쿨을 졸업한 후 2016년 출간한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힐빌리'(hillbilly)는 미국 내의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 노동계급을 상징적으로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 투자 전문가로 일하며 경력과 부를 쌓은 밴스는 2022년 11월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하였고 2024년 11월에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벤스라는 인물의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본인도 어찌할 수 없이 태생적으로 주어진 불우한 환경을 과감히 극복한, ‘오래전 살았던 위인’이 아니라 지금 현존해 있는 40세의 젊은 리더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어떻게 그에게 주어진 비참한 삶의 조각들에서 꿈,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며 절망에 빠진 채 포기하여 주저앉아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꿈꾸며 일어나서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 채플 시간 A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 고난 없이 날 수 없다.
- 우리가 고난을 선택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선택해야 한다.
- 삶을 역동적으로 살게 하는 비결은 결핍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 사막에도 길이 있다.
결핍과 고난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은 제대로 이해했을까. 이건 직접 살아보고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가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 대다수는 결핍이 무엇인지 모를 것 같다. 풍족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채워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이 더 막강해진 시대니까.
-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언제나 주는 것이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자녀에게 결핍을 가르쳐라.
부족한 것이 없이 풍족하게 자라온 아이들을 매일 접하면서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으니, 알고자 하는 의욕도 부족하고 무언가 성취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부족하고 약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왔을 텐데,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가르치고 싶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학교에 가기 위한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삶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분명 좁힐 수 있을 텐데….
승마를 하는 사람의 하루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새벽을 나서는 사람의 하루는 분명히 다르다. 1년이 넘도록 외국에서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삶과 이곳저곳의 거주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의 삶도 분명히 다르고.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일하며 주말을 기다리는 일반 직장인의 생활과 평일에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의 생활이 공존하는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 참 서글픈 세상이네요.
물론 승마하거나 외국에서 지내거나 골프하는 것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끼니를 위해 새벽을 나서는 삶이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닐 것이고. 그런데도 평범한 우리들은 평일에 승마와 골프를 하며 외국에서 원하는 대로 지낼 수 있는 삶이 보기와 달리 그렇게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한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바라고, 특히 우리 아이들은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하고 꿈꾸게 된다.
하지만, 나 자신만의 인생을 보지 못하고 다른 이와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보다 불행한 일이 없다. 그는 무엇을 잘했길래 나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은지, 나는 무엇을 잘못해서 이 모양인지를 끊임없이 따져보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비교하기.
세상이 공평한가? 공평하지 않다. 각자의 분깃, 몫이 다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고 열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다. 각자가 받은 몫이 다르니 그 몫으로 해야 하는 역할도 각각 다른 것이고 남겨야 하는 것도 다르다. 당연히 한 달란트 받은 사람보다 열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남겨야 하는 것이 월등히 많다.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열 달란트 즉, 많은 것들이 주어졌으니, 일단은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밖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나에게 주어진 그 많은 것들이 내 안에 고여서 불행해질 것이고, 많지 않은 한 달란트가 주어졌지만, 밖으로 흘러가서 다른 이들까지 행복하게 되어 한 달란트를 더 남기게 된다면 나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한데….
또 영광스러운 삶이 계속되는가? 그렇지 않다. 또 불행한 삶이 계속되는가? 감사하게도 그것 또한 그렇지 않다. 영광스러운 것 같다가 불행한 것 같다가 다시 영광스러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 듯하다. 그렇다면 세상은, 세상은 공평하다고 해야 할 듯한데….
-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깨닫는 순간 행동하게 되어 있다.
금수저로 태어난 이들의 삶과 그렇지 않은 나의 삶을 비교하며 ‘인생이 서글프다’라고 생각하기보다, 각자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배워가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다. 어두운 어린 시절의 굴레를 벗어나서 감히 로스쿨로 진학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우했던 밴스의 인생이 이제는 꽃피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치가로의 이름을 얻게 된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초심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그가 쓴 책, <힐빌리의 노래>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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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 시간에 나왔던 내용.
맹자의 글이 무척 마음에 든다.
믿어도 되는 걸까.
그럼 나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큰 인물이 될 사람인 건가….
진실이건 아니건, 정말로 믿고 싶은, 멋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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