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수록 피해봤자 소용 없는 이름
존경과 감사
분노와 증오가
교차하는 그 이름
시집『연설:사랑이야기』, 시 '직장 상사' 중에서, 황진혁 작
"내 커피는 타기 없기."
"내가 살 땐 아메리카노 빼고 주문한다."
"퇴근은 내 눈치 보지 말고 가세요. 저녁 밥 안 사줍니다.
밥 사 먹을 돈 있잖아? 시간이 없지."
"다들 나 관두면 나가. 그 전엔 못 나가.
일등 인력들 나가면 능력 없는 관리자 피곤해져."
새로 만난 팀원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뭐가 그리 대단한 대사랴. 요즘 시대에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내 쪽에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주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말한다.
위고 아래고 생각하면 심적 여유 찾기 어려워지는 중간 직급자이지만 나에게도 거쳐온 시간이 있으니까, 직장 상사가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옆에 있으면 밥 먹기도 편하기 어려워지는 게 직장 상사인 거 안다.
능력 가지고 군림할 생각도 없지만 원래 적응이 느린 사람이라 스스로 공부하기도 바빠 스스로도 아직 부족한 게 많은 형편이다. 거기다가 이런 사실들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시대와 세월이 만든 이끼들 탓에 슬슬 꼰대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 되고 있음을 고백한다.
다만 어느 날, 한 팀원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말했다.
"OO쌤, 스트레스 받을 땐 단걸 쫙 마셔주면 좋더라고.
다들 커피숍 각, 내가 쏩니다. (제일 싼)아메리카노는 금지."
이런 일이 있고 며칠 뒤, 그 팀원 선생님이 믹스커피를 타다줬다.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 꺼 타는 김에' 라며 주고 간다. 개인적으로 제법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었는데, 문득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단게 좋더라'고 말했기 때문인가보다 싶기도.
누가 누구를, 누구들이 누구를, 누가 누구들을… 아무튼 생각해준다라는 건 좋은 거 같다. 사람에게 고마운 기억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꼰대에게도 이런 베풂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