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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텀 Aug 15. 2023

무지와 두려움

올해 하이어퀘스트라는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이어퀘스트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인력사무소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회사인데, 원래 같았으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산업입니다. 인력 산업은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산업인데다가 기본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미 완성이 됐다고 느껴지는 분야여서 더욱 더 관심이 가지 않을만한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 회사의 경영진이 이미 완성된 산업에서 새로운 방식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인력 시장은 지역으로 세분화되어 특정 회사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각 지역마다 필요로 하는 인력이 상이하며 빠르고 알맞은 인력 수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의 회사가 많은 지역을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흔히 맘앤팝(mom-and-pop)이라고 부르는 가족 단위의 인력사무소들이 각 지역에서 운영됩니다. 실제로 미국 인력 산업에서 가장 큰 기업인 맨파워가 전체 시장의 겨우 4%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이미 지역화 되어있는 시장에 하이어퀘스트는 꽤나 파격적인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하이어퀘스트는 이 산업에서 회사의 자체적인 확장이 아닌 인수합병을 통한 확장을 택했습니다. 인수합병은 기본적으로 자본이 많이 필요하고 성공률도 높지 않아서 단순히 인수합병을 반복하는 것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인데, 하이어퀘스트는 이 시장에 알맞는 독특한 인수합병 전략을 추구합니다. 이 기업은 특별한 기술력이나 지배력이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있는 가족 단위의 인력사무소를 인수하여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습니다. 현재 각 지역의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가족 사업자들에게 보상을 제시하고 하이어퀘스트라는 프랜차이즈 아래 들어오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따로 사무소를 운영하지 않고 이 사업자들이 납부하는 프랜차이즈료를 받는 것이 주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이 방식이 훌륭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가족사업자와 하이어퀘스트 모두가 이기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사업자들은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여러가지 고충에 시달립니다.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할 수 있도록 홍보를 포함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회계나 보험 처리 등 인력 산업이 가진 복잡한 업무 처리 역시 해내야만 합니다. 인력 산업은 여러 법적 문제가 엮인만큼 이런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개인 사업자는 비용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비록 매출이 곧 수입이긴 하지만 개인 사업 특성상 다양한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그렇게 높은 이익을 올리지는 못합니다. 인력 사무소의 사업 모델 자체가 그렇게 마진이 높은 모델이 아닌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맨파워와 같은 대형 기업도 낮은 한 자릿수의 순이익 마진율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가져가지 못하는 개인사업자들은 그 압박이 더 큽니다. 이런 압박에 시달리는 개인 사업자들에게 하이어퀘스트의 인수는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회계와 보험 처리 같은 어려운 업무는 하이어퀘스트가 모두 처리해주며 사업자는 업무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연봉이 보장되는만큼 짊어진 리스크도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개인 사업자 입장에서는 쉽게 뿌리치기 힘든 제안입니다.


반대로 하이어퀘스트 입장에서는 인력 사업의 전반을 통합하는 것이 아닌 회계나 보험 처리 같은 기타 업무만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마진의 사업을 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인력 사무소 운용에 필요한 여러가지 비용은 여전히 하이어퀘스트가 아닌 각 사업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필수적이였던 비용이 완전히 제거됩니다. 산업 1위 맨파워의 총 매출 마진이 20%가 채 되지 않는데 비해 하이어퀘스트의 총 매출 마진이 40%가 넘어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력사무소를 직접적으로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집약적이지 않은 사업 모델이기도 하빈다. 또한 각 사업자에게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맡기고 특별한 보고체계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 전체의 통합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과 시장의 특색을 살려야하는 인력 시장에서 딜레이를 제거하고자하는 노력입니다. 즉, 하이어퀘스트는 모두가 이기는 방식을 고안해내어 아무도 하지 않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기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하이어퀘스트가 마크 레너드의 컨스텔레이션 소프트웨어와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컨스텔레이션 소프트웨어는 현재 캐나다에서 시총 10위 권에 있는 대형 기업인데 이 기업 역시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기업입니다. 마크 레너드 역시 훌륭한 기술력이나 매력적인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아닌 현금흐름이 어느정도 발생하는 틈새 시장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회사들을 위주로 인수 합병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소규모 회사들을 인수하여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현금 흐름을 발생시켜 현재는 말 그대로 거대한 기업이 됐습니다. 대형 기업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틈새 시장의 작은 기업들을 인수합병 대상으로 삼는 이 전략을 하이어퀘스트가 인력 산업에서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인력사무소를 굳이 인수하고자하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이어퀘스트는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본인들이 원하는 기업들을 인수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업 분석에 가까운 글이지만,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지금부터입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기업을 발견하고 가치평가를 진행했을 때, 이미 주가는 제가 생각한 가치보다 조금 위에 있었습니다. 시가총액이 작은 스몰캡 기업이기 때문에 안전 마진을 충분히 두고 싶었기에 목표 매수가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았고 주가는 목표주가까지 내려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켜보던 와중에 이 기업의 주가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초만해도 $19 수준이였던 주가는 반년만에 $30까지 올라가며 50%가 넘게 상승했습니다. 이런 주가 상승을 보며 아쉬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기업에 어떤 단기적 악재가 생겨서 주가가 목표 주가 아래로 하락한다면 꼭 매수하겠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목표 매수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다음 기회에는 꼭 좋은 기업을 보유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였습니다.


그리고 하이어퀘스트는 최근 실적을 발표하고 하루만에 주가가 무려 28%나 떨어졌습니다. 매출 상승폭은 훌륭했지만 비용이 많이 증가하였고 가이던스가 약했던 것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하락했을 때도 제가 생각한 매수가보다는 위였지만 1불 정도만 더 떨어지면 매수가에 도달하는 수준이였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기업의 급락을 본 이후에는 두려움이 생기며 과연 매수가 아래에 오더라도 매수를 하는게 맞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오니 기회를 잡기가 두려워진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이어퀘스트의 실적 보고를 봤으니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들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산재보험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이던스가 약해진 것을 보며 하이어퀘스트의 성장성에 의심이 생겼고 과연 내 가치평가가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겼습니다.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기존의 '투자 아이디어'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를 가치투자자라고 평하며 투자하는 저에게는 상당히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역시 나의 분석이 맞았다고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자고 다짐했었지만 주가가 큰 폭으로 급락하자 자신감은 사라지고 무지와 두려움만이 남았습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하고, 그만큼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저 스스로의 공부와 분석이 부족하여 주가의 움직임으로 확신을 잃었고 마음을 다잡고 하이어퀘스트라는 기업에 대해 새롭게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이 교훈은 0원짜리 교훈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실수를 하며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은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작성하여 이 대가가 없던 교훈을 다시 새기고자 합니다. 주가에 흔들리는 것은 잘못된 투자라고 잘난척했지만 저 역시 주가에 크게 흔들리는 미숙한 투자자임을 다시 느낍니다. 무지와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투자를 목표로 합니다.


8/14/2023

Value Investor's Sanc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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