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를 어리게 보시는 것 같아서 적어보는 혼자만의 큰 착각~^^
바쁨에 휘둘려, 서랍 속에 묵혀든 일기를 꺼내 봅니다.
<2023년 3월 17일의 일기입니다.>
진짜 큰일이다. 나 나잇값을 못하는 건가? 늘 학년실에 있다가, 올해는 업무 부장을 맡아서 교무실에 자리하게 되었는 데, 자리가 학생부장 근처이다 보니, 늘 좋은 이야기보다는 사건 사고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알게 되면, 또 괜스레 마음이 쓰이고 애가 쓰여서 내 업무에 집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그 소릴 차단할 목적으로 헤드폰을 샀다.
처음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갖가지 공문을 처리하고 있었더니, 내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이어폰 때문에 음악을 듣고 있는 줄 모르시는 교감 선생님이 나를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심지어 주변의 여러 사람들까지 협공해서 나를 불러도 내가 대답을 않고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자, 주변의 웃음을 샀다. 완전 파워울트라슈퍼급의 집중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이 몇 번 있어서, 아예 주변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때는 내가 무언가를 듣고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헤드폰을 착용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로켓배송된 연베이지 빛 블루투스 헤드폰을 언박싱한 후, 성능 확인 겸 집에서 헤드폰을 하고 거실을 어슬렁 거렸더니, 내 모습을 보고 중학생 딸이 빙그레 웃는다.
"엄마, 지금 대개 귀여워."
"요즘 이게 패션템이라던데, 너도 하나 사줄까?"
"아니, 난 좀 부담스러워. 너무 튀는 데?"
평소 무난한 걸 좋아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중학생 또래라면 응당 갖고 싶어 할 줄 알았는 데, 딸은 생각과 달리 거부했다. 중학생 딸도 거부하는 걸 하고서 좋아라 하고 거실을 총총 뛰어다니니, 이제는 초등 아들마저 웃어버린다.
나는 내가 철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특히, 형제관계에서는 언니가 없는 지라 언니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남편한테도 안 떠는 애교를 언니들에게 떨 때가 종종 있다. 어떤 때는 혀까지 짧아지면서... 그러면, 언니들이 그런 나를 더 이뻐라 하면서 잘 챙겨준다.
어릴 적에는 지금 보다 더 철이 없었던 탓일까? 엄마가 동생 낳아줄까 물으면, 언니를 낳아달라고 했었다. 진심 언니 있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다. 언니 입장의 불편함을 알리 없는 나는 언니들이 어딜 가든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다. 때론, 동네 동갑내기도 우리 사이의 시시콜콜한 일을 언니에게 일러서 그 언니에게 내가 혼날 때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내게도 언니가 있었다면, 나의 언니가 내 편 들어서 그 언니랑 싸워줬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이렇게 언니 사랑이 지극하고, 철딱서니라는 것은 없어서 언니 역할을 못하는 내가, 어느 세월에 나도 언니가 되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학년실에 있는 게 가장 무섭고 부담스러운 이유는 때론 내가 그 학년의 최고 언니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막내 기질이 강한 데 언니를 해야 된다니... 그래도, 사회생활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 해내게 된다. 그런데, 내 천성이 아닌 걸 용써서 하니까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을 보면, 어른스러움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나보다 몇십 년은 어린 신입 교사인데도, 언니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 있는 가하면, 몇십 년의 경력이 쌓여도 단무지(단순무식지X)같은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좀 늙을 줄 알았는 데,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가 될까?
글을 쓴답시고, 진득하니 깊이 있는 글은 못 쓰고, 어린 생각으로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내 경우엔, 사람은 아니고 흥미로운 무언가에 곧잘 빠짐)가 쓰면 로맨스가 되는 줄 착각하여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나 쓰고 있으니, 내 나이를 한참 어리게 보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는 것 같아 오늘의 글을 적어본다.
저 올해 5자 달았네요.ㅍㅎㅎㅎㅎ 나잇값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7월이 되면, 정확히는 6월 28일이면, 만나이 계산법으로 내 법적 나이는 12월 생이라 두 살이나 더 어려져서 또다시 4자를 달겠지만, 마음은 그 숫자에도 부응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기만 한 게 함정이다. 더 큰 함정은 몸은 늙는 데, 마음은 익지 않아서 아직도 풋내 난다는 것이고...
젊게 사는 거라고 착각하고 살면서, 주변에 민폐 끼친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아, 근데, 다시 읽어보니, 일기마저도 한없이 막내스럽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