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에어컨
온갖 고민거리에 더위까지 더해지니 이번 여름도 참 많이 힘들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참아보려 했지만 창문을 열어도 오히려 뜨거운 열기에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위협을 받고 나서는 마음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설치가 끝나고 테스트 작동 중에 기사님이 나지막이 읊조리셨던 말. "와- 돈의 맛" 그리고 뒤를 돌아 "오늘 설치 안 하셨으면 어쩌실 뻔했어요" 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맺히는 인중의 땀과 어색한 미소로 말을 대신했다.
퇴사하고 싶다. 잠깐만 멈췄다 가면 안 되겠냐는 물음에 어떠한 이유를 덧붙여도 쉽게 설득되지가 않는다. 사고 싶은 물건을 홧김에 질러버리는 것처럼 시원해져 볼까 싶다가도 어떤 걸 더 얻고, 잃게 될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게 쌓이고, 어떤 걸 놓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간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만끽하려 노력한다. 애쓰지 않는 범주 안에서. 구경도 하고, 한탄도 하고, 눈물도 짓고, 그러다 만난 친절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따뜻함으로 물들었다가. 그런 의미적인 것들은 쉽게 휘발된다. 당장 내가 두드릴 노트북, 당장 우편함에 꽂힌 관리비, 훅 비어버린 통장 잔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줄이 엮여 있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 그저 좋은 것에는 웃고, 슬픈 것에는 울고 단순하게 살아가기로 답을 내린 거다.
답을 지웠다 다시 썼다가 쓸데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덤덤히 나아가는 멋짐도 보였다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용기가 생겼다가 우유부단함에 홀딱 속았다가 이유 없는 절실함에 지질해져 보았다가. 그냥 밤이 되면 에어컨이 오늘 밤만은 나는 부자다 마음먹게 해 준다. 시원하니까. 그 와중에 모르는 건 많지만 단순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여름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발이 시리다. 창문 밖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여전한데 가을이 온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