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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Jun 04. 2024

제주 해녀 할머니들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집 안팎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잠을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라는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읽은 91살과 92살의 제주 해녀 인터뷰 중 몇 가지 말들이 자꾸 밟혀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 해녀는 등에 관을 지고, 칠성판을 지고 들어가는 일이라던데 구십이 넘도록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김: “내려갈 때 본 전복은 따도,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는 것. 전복이 대작대작 붙어 있어도 하나 더 따려고 되돌아갔다간 숨이 모자라서 죽어. 욕심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강: “그게 다 자식들 연필 값이고, 공책 값이고, 책가방 값이니 다시 가 줍고 싶은 마음 태산이지만 잊어야 살 수 있지. 그래서 오래오래 일했지.”


-"내려갈 때 본 전복은 따도,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는 것." 물 속에 내려 갈 때는 전복이나 기타 해산물을 따기 위해서 내려가는 것이니까 보이는 족족 따게되겠지요. 이런 일은 숨쉬기의 제약이 있으니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전복 등을 따서 올라오는 것은 노동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지요. 그런데 올라올 때 보이는 전복 등은 과외 욕망이고 잉여 욕망이지요. 해녀 할머니들은 이런 욕망을 절제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물질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눈 앞에 보물이 있어도 눈 딱 감고 절제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요. 욕망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언제 쉬세요?


김: “비 오는 날도 못 쉬지. 망사리 터진 거 꿰매야지, 양말 터진 거 기워야지. 구덕에 아기 눕혀 발로 흔들어 재우면서 손으로는 바느질했지. 한 살 두 살 마지로 태어난 애들은 오줌 쌌다고 울지, 술 먹고 들어온 남편이 게워놓은 거 치워야지. 잠은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웃음)."


-해녀 할머니들의 이런 이야기는 그녀들만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넝쿨 호박처럼 주렁 주렁 낳아서 키우고, 밤낮 없이 집안 대소사를 다 손발이 닳도록 처리해야 하고, 그래도 살기 힘들면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이것 저것 장사도 하면서 그야말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을 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집 안팎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잠을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라는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들은 일을 안 했어요?


강: “가끔 고깃배도 타고 돌도 치우고 밭일도 했지만 그저 술 먹는 게 직업(웃음). 물질해 남편 외상값 갚으러 가는 게 일이라.”


-가부장적 전통이 오래 도록 유지되던 사회에서 남자들은 가사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대부들은 글줄이나 읽어 과거 시험을 본다고 종일 책을 끼고 있는 것이고, 일반 평민이나 노비들은 종일 토록 바깥 일을 하느라고 바쁘게 지낼 것이다. 그도 저도 안하고 놀고 먹는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술먹는게 직업이고', 해녀들은 어렵게 물질해서 번 돈을 술만 퍼지르는 '남편 외상갚 갚으러 가는게 일이라'고 남일처럼 말을 하는 것이다.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셔야죠.


강: “돈 많은 사람 호금(조금도) 안 부러워. 건강이 최고. 내가 제일 행복하다 생각하면 그게 행복이우다.”


-돈 보다는 건강이 최고라고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건강한 인생관이 그대로 보인다. 할머니들은 사회적 성공을 상징하는 부와 권력 보다는 건강한 삶과 생각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부와 권력은 뜬 구름 같을 수 있지만 건강은 지금 여기의 (hic et nunc) 삶과 직결된다. 부와 권력은 남들이 생각하는 타자의 욕망이라면, 건강은 내가 원하고 내가 지키려는 나의 욕망이다. 나 자신의 욕망을 중시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생각하는 행복도 아주 구체적이다. "내가 제일 행복하다 생각하면 그게 행복이우다.”


이런 이야기들은 딴 나라, 먼 옛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 세대들은 그런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다음 세대들은 거의 모르고 있다. 이런 기억과 기록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텐데, 너무 쉽게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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