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류학자 조한혜정 선생이 어떤 책에서 쓴 이야기가 있다. 선생이 안식년 휴가를 영국의 모 대학에서 보내고 있을 때다. 그 대학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 마다 금요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그곳에 모인 학자들이 주제로 삼고 열띤 논쟁을 하던 것들이 세계 사회학계의 담론을 이끌어 가는 현실을 보고 놀랬다는 것이다. "어쩜, 내가 직접 참여하고 보았던 것들이 세계의 다른 학자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싶어하는 주제라니..." 선생은 그런 현실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다고 한다. 한국의 학자들은 늘 남의 것을 가져다 원숭이 처럼 흉내를 내고 앵무새 처럼 반복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담론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래 전 그 책에서 조한혜정 선생은 과연 언제 우리는 그런 현실을 대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주체 부재'의 현실 앞에서 고통을 겪고 좌절해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현실이 한국 문학 속에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한국의 소설가가 쓴 작품이 노벨상을 받고, 세계의 주요어로 번역을 하고, 세계인들이 그 안의 삶과 인간의 고통에 보편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빈 수사 처럼 들리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우리 생전에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현실이, 바로 생생하게 우리 눈앞에 도래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야말로 비로소 한국의 인문학이 서구의 식민지로부터 '정신적 해방'을 알리는 첫 신호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남의 시대와 남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시대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남들과 공통의 보편적인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을 한강을 위시한 한국의 소설가들이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사회를 자신의 생각과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문학자들의 최고의 꿈이자 목표이다. 이럴 때 비로소 한 시대를 뛰어 넘는 최고의 작품들이 생산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