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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Nov 08. 2024

北の國から


한 페친이 소개해준 일본 드라마 <北の國から>를 유투브를 통해 보고 있다. 1980년에 제작된 드라마이다. 연작 시리즈인데 벌써 10회까지 보았다. 도쿄에서 이혼한 남자가 어린 남매를 데리고 고향인 홋가이도 산골 마을로 돌아와서 겪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로 이어져 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오래 전 <전원일기> 같은 것이지만 그것보다훨씬 깊은 산골이고 원시적이다. 거의 폐가 수준의 숲속의 집을 다시 손보아 살고, 전기도 없고, 물은 1킬로 정도 떨어진 개울에서 길어다 먹는다. 이 드라마를 틈틈히 보고 있는데 거의 중독성이다.



10회에서는 유명한 '홋가이도의 눈보라' 이야기가 나온다. 겨울에 눈이 오는 것이야 늘 경험하는 바지만, 홋가이도의 눈보라는 압도적이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힌 '설국'의 배경이다. 이모 유키코가 옆 집에서 빌린 차에 어린 준이를 태워 함께 간다. 이미 오전에 일기예보를 통해 폭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화창한 날씨 때문에 건성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아버지 고노가 주문해 놓았던 풍력 발전에 필요한 부품들을 읍내에서 찾아 가지고 와야 한다. 오후 2시경 물건을 받아서 집으로 향하는데 준이 아는 형 목장을 들러서 가자고 제안한다. 그곳은 집으로 가는 우회로 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갈 수록 눈보라가 심해져서 도로의 길이 지워져 버리고, 길을 잃은 차는 더 가지 못한 상태로 눈 속에 갇혀 버린다. 그 압도적인 눈보라는 보는 내가 겁이 날 정도이다.



눈보라가 심하다 보니 산골 마을의 전기가 끊어지고 전기로 작동하는 수도도 끊어진다. 그나마 전화는 살아 있다. 산골마을 전체가 비상이 걸린다. 돌아올 시간이 되었어도 안 돌아오자 아버지 고노가 불안감을 느껴서 여기 저기 연락을 해보아도 속수무책이다. 간신히 옆집의 트럭을 빌려 타고 찾아보았지만 그 트럭 조차 다닐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고노의 속이 얼마나 타겠는가? 이 때 쯤 처제 유키코와 준은 눈 속에 갇힌 차 안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준은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구조를 못해 안절부절하는 고노에게 아이누족 출신인 코마가 제안을 한다. 말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을 끌고서 구조해보자고 한다. 몽골의 말은 무려 4,000킬로 떨어진 곳도 찾아간다고 한다. 말의 생체에 새겨진 GPS의 성능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이미 9시가 넘은 늦은 밤이지만 흰눈에 덮인 산골을 뒤져서 마침내 말이 차를 발견한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준과 유키코의 생명을 건진 것이다. 이틀 밤낮을 내린 홋가이도의 엄청난 폭설 앞에서는 오히려 전기와 수도 그리고 차와 같은 문명의 이기들이 속수 무책이다. 새로 개량한 주택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고, 전혀 문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준과 호타루의 집은 별 일 없다는 듯이 넘겼다. 문명과 자연간의 관계에서 반전이 생긴 셈이다.




요즘의 차들은 거의 전자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고장이 나면 사용자가 손을 보기가 힘들다. 전문 기사의 전문 장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한국 같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전화만 걸면 30분 이내로 A/S 기사가 달려오는 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몽골의 초원에서는 그런 도움을 구하기가 힘들다. 하늘의 별자리가 GPS를 대신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고장이 나도 모든 것을 운전기사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초원을 달리는 '푸르공'이라는 차가 딱 그런 차이다. 러시아에서 만든 이 차는 전기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기계식이다. 초원에서 고장이 나도 기사가 손을 봐서 다시 끌고 가는 차량이다. 생긴 것도 촌스럽고, 좌석도 무지 딱딱해서 이 차를 타고 몽골의 초원길을 달리다 보면 엉덩이가 보통 아픈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절대 자연의 위력을 받는 곳에서는 이런 차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눈 속에 갇힌 준과 유키코를 구한 것은 본능적으로 움직인 말이고,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태에서 생존력이 강한 곳은 오히려 그런 것들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집이다.



문명의 위용을 자랑하는 현대 도시도 기간시설이 파괴될 경우 순식간에 원시보다 더 심한 원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늘 소식을 주고 받던 SNS나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이런 상태가 되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때로는 문명을 벗어난 삶에 대비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대면 관계가 단절되고 도시가 고립되는 경험을 겪었는데, 전기와 수도와 인터넷 망이 끊어진 삶도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문명 이전의 자연과 문명 이후의 자연, 그 두 가지를 다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가 한창 심하던 2020,06,07에 쓴 글입니다. 우리 생전에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룰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다음 세대는 AI 전사들과 전쟁을 치를지도 모를 겁니다. 사람들의 기억이 생각보다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구헌 날 중국 타령하던 트럼프의 멍청한 대처 탓에 무려 100만 가까이 되는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그것 말고도 트럼프의 잘못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멍청한 대중은 자신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도자만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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