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서 <철학은 반란이다>를 격투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어를 통한 논쟁과 비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전 교범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은 이 교범을 최고 수준의 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돈오(頓悟) 논쟁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 3부 10절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 인가 돈오점수(頓悟漸修) 인가?'를 다루었다.
지눌에 대한 성철의 비판은 문중 간의 싸움까지 일어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시대 선사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해 20세기의 대표적인 선사 성철은 돈오 이후에 점수가 필요 없다. 오직 돈오돈수頓悟頓修 일뿐이라고 비판했다. 성철의 주장에 따르면 한 번 깨달은 후에는 오랜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따로 점수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고, 점수를 요한다면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철의 이런 비판에 대해 고려 시대의 선사인 지눌이 답변할 수는 없다. 대신 문중 간에 논쟁이 붙었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때문에 돈오냐 돈수냐는 한국의 선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닭이 있어야 달걀을 낳을 수가 있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고, 달걀이 있어야 그 달걀에서 닭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한 마디로 이것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변증론’에서 제시한 ‘안티노미Antinomie’ 이론과도 같다. 칸트가 4가지 형식으로 제공한 변증론은 이를테면 “세계는 시초가 있다”라는 명제도 옳고 “세계는 시초가 없다.”라는 명제도 옳다는 형태이다. 형식 논리적으로 판단할 때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리다는 것처럼 서로 모순적인 명제가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그런데 안티노미의 핵심 요지는 둘 다 옳을 수가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이러한 명제들은 경험을 초월해 있기때문에 옳고 그름을 경험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돈오가 옳으니 돈수가 옳으니 하는 논쟁도 경험적으로 쉽게 확증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문제를 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공존이 가능하고, 보는 방식에 따라 상대의 주장이 틀리거나 맞을 수도 있고, 내 주장이 틀리거나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있지 선택의 문제는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오돈수는 깨달음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보는 것이고, 돈오점수는 '인식론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존재론적으로 본다는 의미는 깨달음의 본질이나 본체가 있고, 그것을 경험한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그것이 존재하고 또 확연하게 본 사람의 입장에서 점수를 주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갈증이 심할 때 찬물을 마셔본 사람과 단지 이야기만 들은 사람의 차이는 아주 크다.
이에 반해 점수를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개명이자 확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하나의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의 깨달음이 이어질 수가 있다.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했듯,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점수는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려는 자의 알을 깨는 행위와도 같다. 이런 경험은 인식의 지평이 달라지고 확장되는 경험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때문에 여기서는 점수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보느냐와 인식론적으로 보느냐는 차이가 크다. 존재론적으로 볼 경우 '깨달음의 도그마'에 빠질 수 있는 반면, 인식론적으로 볼 경우에는 '회의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나누는 우리의 전략을 상대주의 혹은 관점주의로 비난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문제의 성격을 적절히 파악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경우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서문에서 지적했던 오류를 얼마든지 반복할 수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숫염소의 젖을 짜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젖을 받기 위해 그 밑에 양동이를 놓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숫염소의 젖을 짜는 일도 괴이한데, 그 밑에 양동이를 놓는 행위는 더욱 괴이하기 때문이다.
격투기와 마찬가지로 논쟁과 비판에서도 상대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