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이사를 간다. 멀리 가는 것은 아니고 같은 단지 내의 다른 아파트로 간다.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데 아파트를 판다고 해서 이사가는 것이다.
원래 행신에서 살다가 파주로 이사온 게 2019년 7월이다. 살던 아파트를 월세를 주고 온 것이다. 행신 아파트는 주변에 상가가 많아서 복잡했다. 그런데 더는 강의를 하러 나갈 필요도 없어서 조용한 곳을 택해 파주로 이사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이 아파트 뷰가 너무 좋아서 바로 계약을 했다. 때마침 반년도 되지 않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이곳의 덕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울-문산 고속도록가 개통되는 바람에 서울 나들이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주변 환경이 좋고 이동도 쉬워서 노후에 살기는 그만이다.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와서 학문적으로 성과가 많았다. 연구 논문 3편을 썼고, 한림대 태동 고전 연구소에서 <문명, 위기를 넘어>(학지원, 2024) 공저를 냈다. 그리고 나의 저서도 4권을 냈다. <철학과 비판>(수류화개, 2021)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2023)를 냈고, 2025년에는 자전적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중앙 미디어, 2025)를 썼고 <철학은 반란이다>(이안에, 2025)도 얼마 전에 출간을 했다. 그 사이 강연과 논문 발표도 여러 차례 했고, 일본 학자들과의 세미나에서 2차례 발표도 했다. 지난 7월 5일에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북토크> 까지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지난 6년 동안 나의 '파주 시대'는 다른 어떤 때, 어떤 곳보다 학문적으로 성과가 높았다. 물론 그 이전의 연구가 축적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결과물은 파주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적지 않은 업적을 낸 데는 다른 이유들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현재 상고 있는 공간의 영향도 클 것이다.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에게 이런 공간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복잡하지 않고, 자기 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끔씩 산책할 수 있는 공간는 자유로운 상상과 사유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사를 가야만 했어도 이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바로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아파트를 구했다. 파주 시대의 전반기에 60대를 보냈다고 한다면 이제 후반기에는 조만간 70대로 넘어간다. 60대 만큼 생산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잘만 관리를 한다면 그 이상으로 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