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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 철학이 없을까?

by 이종철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 철학이 없을까?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허구헌 날 남의 이론이나 남의 철학에 올라 타야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까? 철학자들은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창작자나 다름 없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이 남의 작품에 올라타서 창작을 할 수가 있을까? 물론 기존 작품의 특정한 경향이 자신의 작품 창작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작품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경우는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일찍이 과학사가 T. Kuhn이 이야기를 했듯, 과학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일종의 과학 혁명을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학자가 있고, 다른 하나는 그런 패러다임 안에서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문제 해결 형 과학자들이 있다. 전자에는 고전 역학을 창시한 I. Newton이나 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A. Einstein 과 같은 과학자가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이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과학적 탐구를 할 수가 있다.


이런 작업은 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자들의 경우도 한 시대를 풍미하는 새로운 철학을 창시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철학사에 등장하는 많은 철학자들이 그렇다. 서양 철학사의 경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 경향의 철학자들, 칸트와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와 니체, 20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렇다. 동양 철학사의 경우도 공자와 맹자, 춘추 전국시대에 등장하는 순자와 법가들, 장횡거에서 주희에 이르는 신유학자들, 20세기 들어 서양의 철학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철학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신유학자들이 그렇다. 반면 대부분의 아카데미권 철학자들은 이러한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철학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분류를 한국 사상사와 철학에 적용하면 어떨까? 한국 사상가의 경우에도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에서 원효와 의상, 고래 시대의 지눌과 보조, 조선 시대의 퇴계와 율곡,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중국을 통해 기존 유학이나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나름으로 해석한 토착적 사상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런 경향은 20세기 들어 서양의 사상과 철학이 물밀듯이 들어온 20세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사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주력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전통 유학이나 불교를 일신하는데 주력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사상에 기초해 새로운 사상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대부분의 한국의 사상가들이 전자에 해당했고, 불교 사상가 한용운이나 다석 유영모의 경우는 후자의 경향에 해당한다. 유영모는 기존 동양의 전통 사상에 정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독교를 독특하게 재해석하기도 했다. 강단 철학자 박종홍 같은 경우는 동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철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미국의 문화가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John Dewey의 프래그마티즘이 유행했고,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남한의 경우 서양의 실존주의가 지식인들의 머리를 사로 잡았다. 그 이후 아카데미권을 중심으로 영미권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철학자들을 통해 분석철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유럽권에서 유학을 마친 철학자들을 통해서는 후썰의 현상학이 유입되었으며, 유신 말기 부터는 사회 비판 이론의 일환으로 헤겔철학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이 소개되었다. 1980년도 광주 항쟁을 거치면서 사회 변혁 운동의 브레인 역할을 자처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널리 읽혔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중국의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고 동서 냉전을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부가 무너지면서 잇달아 동구권의 소비에트 위성국가들이 무너지면서 국내에서도 더 이상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한국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까지는 일종의 지적 아노미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 틈을 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행하던 Post Modernism 계열의 사상이 잽싸게 많은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을 사로 잡았고, 이들과 논쟁한 독일의 J. Habermas의 철학이 빠르게 소개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들은 시대와 유행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옷(철학과 사상)을 갈아 입은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해방 전에는 마르크스주의를 해도 신남철이나 박치우 같은 철학자들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재해석 하려고 노력했지만, 해방 이후의 철학자들은 그저 외국에서 배워온 것을 풀기에 급급하거나 새로운 철학과 사조를 배우고 해석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다양하게 수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철학자들의 주체성은 그 이전 시대 보다 훨씬 퇴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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