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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3편

by 이종철


수십년 전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동안 묻혀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다시 살아난다. 인간의 기억은 거대한 창고와 같다. 그 안에 수많은 경험들이 담겨 있지만 평소에는 잘 모른다. 그러다가 그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 이것 저것 들추다 보면 평소 전혀 생각도 못했던 것들이 드러난다. 때문에 앞으로 살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오금리 집으로 오려면 나무가 울창한 숲속의 언덕길을 지나야 했다.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상한 데 가는 것이 아니냐고 몇 번 씩 묻는 경우가 있다. 술먹고 택시 타고 올 때도 택시 기사가 약간은 무서워하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곳도 아닌데 전혀 딴 세상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박사 과정 수업을 듣거나 강의를 하러 갈 때 이 언덕을 넘어서 갈 때이다. 평소 바쁘지 않을 때는 쉬엄 쉬엄 걸어 다녔다. 지금 그곳을 가보면 돈을 주고 걸어 보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거리였다. 나중에는 삼송리 역까지 다니는 마을 버스가 생겨 비교적 편하게 다녔지만, 공휴일이나 명절 때는 쉰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그 언덕을 넘어서 봉천동 부모님 사는 곳 까지 가야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튼 고생은 됐지만 건강하게 살았다.


우리가 차를 처음 장만한 것은 1993년 경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진관동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차가 없으면 쉽지 않았다. 면허는 아내가 먼저 땄고, 차는 내가 알던 지인이 양도한 '프레스토' 중고 차였다. 이 차는 당시 드물게 오토 차인데 엔진이 많이 떨렸다. 차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아내가 차를 몰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 갔다가 저녁 때 퇴근할 때 데려 왔다. 피아노를 전공한 유치원 원장이 사람 좋아서 아이가 유치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아이가 피아노도 열심히 배웠다. 나는 면허를 따기 전에 그 차를 가지고 혼자서 연습을 했다. 한 번은 그 차를 끌고 약수터로 올라가는 샛길에서 삐긋해서 구렁텅이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차를 그렇게 놔두고 집까지 와서 아내를 불러 차를 뺀 적이 있었다. 밤에는 그 차를 몰고 대략 7킬로 정도 거리 되는 서삼릉으로 혼자서 차를 몰고 다녀오기도 했다. 요즘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한 번은 새벽에 서삼릉으로 가는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라이트 밝은 빛에 다람쥐들이 둥그렇게 몰려 있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마친 다람쥐들이 회의를 하는 것 같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면허도 따기 전에 이렇게 차를 몰고 다녔기 때문에 차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면허를 따자 마자 도로 주행도 하지 않고 토요일에 차를 몰고 홍대 근처의 한철연 사무실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잘 못 보아 꼼짝없이 한 가장 자리에 갇힌 적이 있었다. 초보가 달리 초보가 아니라 그런 신호를 잘 못 보기 때문에 초보인 것이다. 간신히 주변 운전자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와서 사무실까지 갔다. 문제는 일을 보고 나서 다시 연대까지 가야 하는 일이다. 홍대 뒷골목으로 차를 빼서 신촌 로타리를 거쳐 연대까지 가는 길은 거리는 얼마 안돼도 쉽지 않은 거리다. 한 번 도로에서 애를 먹고 나니까 비로소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마침 신촌 로타리로 가는 동료가 있어서 내 차를 탔다. 그런데 로타리 차가 막힌 곳으로 들어가서 헤매기 시작하니까 이 친구가 덜컥 겁이 났나 보다. 나의 운전 상태를 알아채고 내려 달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혼자 낑낑 거리면서 연대에서 일을 보고 집까지 간신히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은 좌충 우돌했다. 버스와 약간의 접촉 사고가 있었고, 주차하다가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 당시는 가벼운 접촉 사고는 별로 문제 삼지도 않았던 낭만적 시절이었다. 그렇게 1주일 동안을 헤매고 나니까 운전에 자신이 생겼다. 초보 딱지도 붙이지 않고 1주일 만에 초보 운전자를 벗어났다.


차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차를 끌고서 용인에 있는 명지대 분교까지 강의를 하러 다녔다. 워낙 차가 떨어서 고속도로에서도 80킬로 이상 주행을 하지 않았다. 어떤 겨울 날에는 창문이 닫히지 않아서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도저히 안 돼서 이듬해에 차를 한 대 뽑기로 했다. 대출을 5백만원 정도 받고 아내가 모아 두었던 돈을 합쳐서 마침 대우에서 나온 신차 '씨에로'를 구입했다. 지금 폭염으로 애를 먹고 있는데, 씨에로 에어컨이 엄청 시원했다는 느낌이었다. 이 차가 힘이 좋아서 이 차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강원도 대관령 같은 험한 언덕긽을 올라 갈 때는 다른 차들을 추월해서 달리는 기분도 좋았다.아내는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말하라고 하면 반드시 '여행;을 꼽았다. 그만큼 전국 방방 곡곡을 많이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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