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이문세의 소녀

우리 모두가 사랑한 소녀, 그 추억을 소환하다

by 하기

명곡의 탄생, 이문세의 소녀

우리 모두가 사랑한 소녀, 그 추억을 소환하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수 없어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이문세가 소녀를 발표한 것은 1985년 그의 3집 앨범을 통해서이다. 그전까지 2집 앨범을 낸 가수였지만 그때까지 이문세는 가수로서보다는 입담 좋고 진행 잘하는 MC로 더 유명했다. KBS 젊음의 행진이라는 프로그램에 대적하기 위하여 MBC에서 만든 영일레븐이라는 프로그램의 MC로 발탁되며 진행자로서 입지를 넓혀가던 그에게 기회가 온다. MBC 라디오의 대표적 심야 음악방송 DJ를 맡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진행자이던 개그맨 서세원이 하차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특유의 유머와 진솔하고 감성적인 멘트로 많은 소녀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별밤지기라는 칭호까지 얻으면서 진행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진행자로서의 성공은 그에게 돈과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가슴 한편에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배가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수로서 그를 불러주기보다 말 잘하고 사교성 있는 진행자로서 각인되는 이미지가 내심 걱정되기도 하던 즈음 그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작곡가 이영훈과의 만남. 성격적으로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었던 이문세에 비하여 골방에서 줄담배를 피며 창작에만 몰두하는 내향적인 이영훈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더 끌렸을까? 그들의 만남은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이후 10년간 한국 팝 발라드를 대중적인 장르로 끌어올리며 영미 팝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가요시장을 한국 가요가 주류가 되어 이끌 수 있게 해 준다. 그 후 변진섭, 노영심, 이승환, 신승훈 등 팝 발라드의 전성시대가 된 90년대의 초석을 만들어내는 업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 시작에 소녀가 있다. 이영훈과 첫 작업으로 시작된 3집 앨범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더니 소녀에서 한국 팝 발라드의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별밤지기로서 당시 소녀들의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이문세의 대중성이 이영훈이라는 작곡가의 천재성을 흡수하여 명곡들을 줄줄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문세가 운이 좋아 이영훈이라는 작곡가를 만났다고 하지만 나는 이문세를 만난 이영훈 작곡가의 운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클래식과 팝을 융합시켜 대중가요를 창작한 그의 기법은 그 당시에는 실험적이고 모험적이었지만 이문세라는 가수의 그릇에 담겨 대중들에게 선물되었기에 더욱 빛나는 예술이 될 수 있었다.


교회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열애 끝에 1989년 결혼에 골인하며 서울대 교수 장인과 이화여대 교수 장모라는 처가의 후광과 함께 가정적 안정까지 이루어 낸 이문세는 1996년 11년간의 별밤지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연 위주의 대형가수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중간중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와 라디오 DJ를 하기도 했지만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과 호흡하는 자리를 많이 가지게 된 그는 공연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는 국민가수로 성장하였다. 갑상선암수술로 중간에 휴식기를 가지기도 하고 영혼의 친구인 이영훈 작곡가의 폐암 사망이라는 시련에 울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시련을 모두 극복하고 환갑이 넘은 지금도 꾸준한 활동으로 대중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행복한 가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문세의 공연을 두 번 보았다. 첫 번째는 2003년 이화여대 강당에서 한 크리스마스이브 공연이었다. 한참 아내와 연애 중이던 나는 공연과 함께 아내의 반응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40대 중반이던 이문세는 열정적으로 무대를 장악했고 그 에너지를 만끽하며 집사람과 함께 공연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공연은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송년공연이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와 중년이 된 아내와 함께 공연을 보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었다. 딸아이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문세 노래를 많이 들려줘서 그런지 이문세 노래를 좋아하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든 이문세는 체력보다는 세련된 무대매너와 화려한 볼거리 등으로 우리 가족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코로나로 공연장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현재에도 언젠가는 세 번째로 이문세 공연을 보기를 꿈꾼다. 그날에도 소녀를 들으며 같이 야광봉을 흔들어주는 가족들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그렇게 이문세의 소녀는 나이와 세대를 넘은 명곡의 반열에 올라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자기만의 추억과 그 추억을 함께 한 소녀의 감성을 소환시켜 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GSixKl7fU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명곡의 탄생, 윤수일의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