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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Jan 15. 2024

세상을 향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출사표를 던지다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젊은 소설가, 세상을 향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출사표를 던지다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토마스 만은 독일계 아버지와 브라질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북유럽적 전통인 엄격한 시민의식과 청교도적 금욕주의와 자유롭고 분방했던 어머니의 라틴적 낭만가적 기질은 토마스 만의 본질적 요소이자 평생 그의 정신을 갈등하게 했던 요인이 되었다. 토마스라는 비독일적 이름과 만이라는 성이 상징하는 게르만적 뿌리를 연상시키는 가문의 이름이 부조화를 야기하듯이. 이런 자전적 요소가 그의 문학적 출사표에 해당하는 단편소설 '토니오 그뢰거'를 탄생시키게 된다.


문제는 토니오가 한스 한젠을 사랑하고 있고 한스로 인해 벌써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박하고도 가혹한 교훈을 열네 살 난 그의 영혼은 이미 삶으로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은 경험들을 잘 유념했다가, 말하자면 마음속에 새겨 두고는 거기에서 어느 정도 기쁨을 느끼곤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험에 순응하거나 그로부터 실용적인 이득을 끌어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또한 그는 학교에서 그에게 강요하는 지식보다는 이런 교훈을 훨씬 중요하고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사실 그는 고딕식 아치로 되어 있는 교실 안에서의 수업 시간에도 대개는 이렇게 통찰한 것을 그 근저에 이르기까지 느껴 보고, 또 궁극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보는 데에 몰두하곤 했다(소설 본문 중에서).


그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한스 한젠이라는 남자친구와 잉에보르크 홀름이라는 짝사랑 여성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 채워지지 못하는 갈증을 겪는 시절이었다. 파란 눈과 금발로 상징되는 아름다움을 가진 그들은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남들과도 잘 지내는 인싸로서 토니오에게 질투심을 유발한다. 그들이 토니오와 이별한 후 연인이 됨으로써 결정적으로 토니오는 자신의 학창 시절과 반목하게 된다. 시민으로서의 가능성보다는 예술가로서 시를 쓰고 문학을 하는 데 경도되는 결정적 계기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악화되는 만큼 그의 예술가적 재능은 날카로워졌고 꽤 까다롭고 뛰어나고 소중하고 섬세해졌으며 진부한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분별과 취향의 문제에 지극히 민감했다. 그가 처음 등단하자 관계자들 사이에서 많은 박수갈채와 큰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값지게 세공한 물건으로서 유머에 가득 차 있고 괴로움을 알고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 한때 그의 선생님들이 꾸짖으면서 부르던 그 이름, 그가 호두나무와 분수와 바다에 부치는 그의 첫 시 아래에다 서명을 했던 그 이름. 남국과 북국이 복합된 그 울림. 이국적인 입김이 서린 이 시민 계급의 이름은 순식간에 탁월한 것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거기에는 체험의 고통스러운 철저성에다가 끈질기게 견디면서 명예를 추구하는 희귀한 근면성이 한데 어울려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 근면성이 꽤 까다롭고 신경과민이 그의 취향과 싸우면서 격렬한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 비상한 작품을 창조해 내었기 때문이다(소설 본문 중에서)


그를 계속 갈등하게 했던 북구적 이성과 남반부적 감성이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의 문학에 대해 세상은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그것은 낯선 것에 대한 반감이 내재된 것이었기에 그의 뿌리인 게르만적 시민의식이 그의 내면을 괴롭히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이런 그의 상처는 화가이며 예술적 동지인 리자베타를 만나면서 치료받기 시작한다.


"그렇지요? 충격이 심하실 겁니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 때문에 판결을 약간 감량해 드릴까 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당신은 그릇된 길에 접어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 씨, 길 잃은 시민이지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는 단호히 일어서서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제는 안심하고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처리되어'버렸으니까요."(소설 본문 중에서)


리자베타로부터 길 잃은 시민으로 호명되는 순간 그는 그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확신과 앞으로 그가 가야 할 문학세계에 대한 이정표가 된다. 그 이정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소설가 토마스만은 단편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통하여 세상에 대하여 문학적 출사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썼던 작가 제임스 조이스처럼.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별로 많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리자베타, 나는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약속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바다의 물결 소리가 내게까지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있는 한 세계가 들여다보입니다. 그 세계는 나한테서 질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싶어 안달입니다. 또한 나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허깨비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은 부디 마법을 걸어 자기들을 풀어 달라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허깨비들과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 그리고 비극적인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인데, 나는 이것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사랑은 금발과 파란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생동하는 밝은 사람들,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일상적인 사람들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리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또한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소설 본문 중에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소설가는 이후 '부란덴부르크가 사람들'과 '마의 산'이라는 장편소설을 통하여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이루게 된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소설가의 출사표는 세상을 향해 새로운 문학을 선보이겠다는 약속을 하게 했고 그는 시민적 성실함으로 그의 약속을 지켜내었다. 물론 그의 내면에 예술가적 본능이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넘쳐나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리고 세상은 그런 소설가에게 노벨문학상을 헌정함으로써 그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작가가 이런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설가들이 이런 해피 엔딩을 꿈꿀 자유는 세상 누구도 뺏지 못한다. 그런 것이 끝없이 시지프스의 수행을 반복해야 하는 예술가들의 창작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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