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킥보드가 아닌 수동 킥보드를 탄다. 손의 힘이 아닌 발의 힘으로 가니, 나는 족동(足動) 킥보드라 부른다.
전동 킥보드는 편하다. 하지만 돈이 든다. 공유 전동 킥보드는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따로 구입하기에는 비싸다. 대체재로 자전거도 괜찮다. 앞에 바구니가 있으니, 짐도 많이 실을 수 있다. 하지만 주륜장이 필요하다.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없다. 족동 킥보드를 선택한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결핍에 대한 보상이다.
나는 허약한 아이였다. 학창시절 체육 실기는 80점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잔근육발달이 형편 없었고, 운동신경도 꽝이었기 때문에,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스케이트와 같은 이동 수단을 잘 타지 못했다. 잘 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성인이 되고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어른이 되고서야 폐활량도 늘고 잔근육도 붙고 요령도 생겼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 운동 실력이 한 중간쯤은 한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거리를 이동해야 할 일이 생겼다. 버스 3-4 정거장 거리였다. 그런데 버스가 20-30분에 한대가 온다. 사람들은 공유자전거, 공유전동킥보드를 탔다. 나는 일반 킥보드를 하나 구입해서 타고 다녔다.
웬 아저씨가 어린이 장난감 같은 킥보도를 열심히 밀고 다니니, 지나가는 전동 킥보드 유저가 웃는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즐겁다. 전동 킥보드는 나보다 3배 이상은 빠른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2명도 타고 다닌다. 속도, 탑승인원 모든 면에서 족동 킥보드보다 우월하다. 몇 배다 더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다. 하지만 내가 족동 킥보드를 타는 이유는 어릴 적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보상이다. 어른이 되어서 - 이제 운동에 조금 자신이 붙어서 과거에 하고 싶어도 못했었던 것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쁘다.
족동 킥보드를 타는 어른을 거의 본 적 없다. 나 말고 딱 2명 보았다. 오늘 경기도 광주시에서 아이들과 함께 킥보드를 타고 가는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은 몇 달전 보았다. 그때 나는 킥보드를 타고 가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어떤 사람이 전동이 아닌 족동을 타고 있었다. 그를 목격하고 반가웠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생각에 인사를 할 뻔 했다.
서로 마주보고 오고 있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기 위해서는 간격을 벌려야 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 사이에는 경계를 나누어주는 흙과 잔디가 있었다. 내 반대편에서 오는 그 사람은 나를 발견하고, 킥보드와 함께 폴짝 뛰어 흙과 잔디를 뛰어 넘었다. 스케이트보더가 펼치는 묘기를 내 앞에서 선 보인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순간 열이 뻗었다.
강조하지만, 내가 킥보드를 타는 이유는 어릴 때 하고 싶었지만 잘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보상이다. 누군가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는 킥보드를 내게 보여도, 혹은 황금으로 만든 킥보드를 내게 자랑해도 나는 부럽지 않다. 그런데, 놀라운 운동 신경으로 킥보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니 내 속이 꼬였다. 마치, 몸무게가 100kg가 넘어서 살을 빼고 싶어 죽겠는데, 누가 슬림한 몸매를 보이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열심히 족동 킥보드를 탈 것 같다. 타면서 계속 행복할 것 같다. 나 말고도 많은 어른들이 타고 다녀도 좋을 듯 싶다. 다만, 내 앞에서 점프 묘기 부리는 사람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보면 내 눈꼴이 시릴 것 같다. 내 눈을 보호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바램이다.